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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16. 2024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강력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실패? 그거 먹는 거 아니었어?

나의 실패담은 엄청나고 끝이 없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도 포기도 실패도 많이 했다. 실패의 이유는 단 하나, 스스로에 대한 가볍디 가벼운 믿음이다.


굳건한 믿음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얼마 전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된 교육원 동기의 소식을 들었다.

같이 공부를 했던 게 2016년이니까 동기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계속 드라마를 썼던 것이다. 미니시리즈 부문에 당선됐으니 아마 잘 되면 내년쯤엔 TV에서 그녀의 드라마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4년 전에 공모전에 당선됐다면 나도 지금까지 드라마를 쓰고 있겠지?


기초반을 지나 연수반에 들어가 첫 단막극을 썼을 때 교육원의 강사였던 작가님은 공모전에 출품해 봐도 좋을 것 같다며 동기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가 쓴 드라마를 칭찬했지만 당선의 행운은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여러 편의 단막극을 썼지만 글이 나아지기보다는 점점 퇴보하는 느낌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은 내가 쓴 글을 좋아하고, 나만의 정서가 있으니 꾸준히 개발하면 꼭 성과가 있을 거라고 응원했지만 그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길은 험난했다.


퇴근 후에 매일 스터디카페에 가서 서너 시간씩 글을 쓰고 쓴 글에 대해 합평을 듣고 평가를 반영해 수정을 해도 글의 완성도는 점점 마이너스를 향해갔다.


처음 교육원 면접 장소에서 <내 딸 서영이>의 소현경 작가가 물었다.


“왜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드라마는 최적의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행복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내 삶은 지극히 평범했고, 그에 비해 다른 작가지망생들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들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겠다 싶었다. 글 잘 쓰는 작가지망생들에겐 하나같이 ‘결핍’이 있었다. 결핍이 있는 그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지만 그렇기에 그 치우친 곳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본능적으로 결핍을 방어하기 위한 적들이 탄생하고 그 적은 엄청나게 강했다. 적이 강할수록 드라마가 재밌어졌다. 그들의 결핍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드라마가 됐다. 그들의 삶은 불행할지언정 그들의 글은 훌륭했다.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불행한 작가들의 삶은 최고의 소재이며 밑거름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나를 질책하던 중 결정적인 한 방이 날아와 꽂혔다.

동료 작가지망생이었던 현직 영화 제작자 지인이 내가 쓴 글을 연출자 2명에게 보여줬는데 글을 다 읽고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고 했다.


“이 글 쓴 작가, 착하죠? 인물들이 너무 착해.“


극작 속의 인물이 착하다는 말은 곧 재미없다는 말이다.

극이 재밌으려면 인물들이 팽팽하게 대결해야 하는데 착한 인물들은 서로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지인은 그래도 나를 위로하려는 듯 읽을 만한 글이어서 보여준 거라고 변명처럼 늘어놨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몇몇 사람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잘 못 쓴 글, 나쁜 글이라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그들의 평가에 맞서는 나는 한없이 나약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길을 가야 하는데 한 번 꺾인 자신감은 회복이 안 됐고 다시 글쓰기를 포기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화에 이어 소설과 드라마까지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이론은 빠삭한데 실전엔 별 볼 일 없는 상태가 됐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평가하고 첨삭해 주는 덴 도가 텄는데 정작 내 글은 다듬지 못했다.




내 인내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새로운 결심이 섰을 때 난 공개적으로 주위사람들에게 알려 왔다. 사람들은 나를 격려하고 지켜보며 응원했다. 그래서 처음엔 누구보다 열심히 그 일을 해낸다. 결과가 어떻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며 꿋꿋이 견딘다. 하지만 한계점은 보통 3-4년이 지나면 찾아왔다. 주위의 격려와 응원도 시들해지고 내 인내의 바닥도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렇게 조금씩 지쳐가다가 결정적 한 방이 나를 무너뜨린다. 결정적 한 방은 아주 사소하지만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무게를 갖고 있다.


방송, 영화, 소설, 드라마까지 오랜 시간 글을 써왔지만 매번 끝을 보지 못한 건 나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1년만 더 아니 반년만 더 견뎠어도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3-4년을 힘들게 고생하고 단번에 포기를 했다. 더 이상 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가진 능력을 깎아내렸다. 아마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 더 빠른 -포기라는- 결정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실패에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한심함과 아쉬움은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말이다.


얼른 포기해야 마음이 편했고 질질 끌면 주위의 시선과 보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불편했다.

불편함을 이겨낸 드라마 교육원 동기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래서 더욱 지금의 나를 보잘것없게 만들었다.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해내지 못했고, 그걸 해낸 동기를 부러워하고 있는 나라니. 자신을 얼마나, 어디까지 믿어야 8년이란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걸까? 그 믿음이 부럽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은 강하다.

신도 사랑도 재능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걸 믿고 결국엔 보이는 것으로 이뤄낸다. 공모전에 당선된 동기도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았겠지만 결국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당선이라는 결과로 믿음을 가시화한 것이다.

 

확률 게임에서 늘 포기의 편에 섰던 나이지만 이번엔 기필코 ‘보이지 않는 나의 능력’을 믿고 글 쓰는 데 전념해 보려고 한다.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8년 전의 마음가짐을 다시 꺼내어, 결핍이 없다고 주저하지도, 착한 글이라고 좌절하지도, 실패했다고 포기하지도 않고 나아가려 한다.


또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실패? 그거 먹는 거 아니었어?’
하며 계속해서 먹어치울 수 있기를!



휴우. 벌써부터 후달리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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