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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09. 2024

현재의 불편함이 미래의 나를 편하게 할 수 있다면

엔진오일 좀 갈아주세요, 제발!

하루종일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묵은 김치로 전을 부쳐 막걸리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소파에 길게 누워 밀린 드라마를 실컷 보고 졸리면 그대로 잠들었다가, 찌뿌둥하지만 알찬(?) 하루가 지나갔으니 내일 출근하려면 침대에서 편히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침실로 향한다.


이건 익숙하고 평범하고 편안한 일상이다.

주말이면 십수 년을 이렇게 살았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질러 있는 모습이 한심해서 대청소라도 할량 옷장을 뒤집어엎고 욕실에 광도 내보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인생 뭐 있어? 이러다 가면 그만이지.”


과연 이러다 가면 그만일까?




운동은 시작도 못해 보고 허리가 나간 날.

병원에 들렀다 출근을 했지만 앉아 있는 게 곤욕이었다. 허리만 아픈 게 아니라 허벅지 종아리를 지나 발끝까지 저렸고, 아픈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다 보니 목까지 뻐근해져서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차를 쓰고 퇴근해 집으로 갔다.

러그 위의 폼롤러를 치우고 정자세로 누웠다. 무릎을 접어 가슴으로 깊게 끌어당기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폼롤러 위에서 버텼을 때처럼 아픈 게 아니라 허리 근육이 이완되는 아픔이어서 참고 견뎠다.


병원에서 준 약을 먹고, 허리에 파스를 잔뜩 바르고, 찜질 매트를 꺼내 허리를 감쌌다. 똑바로 누워있는 게 버거워 옆으로 누워 새우 자세를 취했다. 약 기운이 돌고 등이 따뜻해지니 졸음이 왔다. 쪽잠을 잔 줄 알았는데 일어나 보니 3시간이 지났다. 회사에 있었으면 퇴근 벨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허리를 쉬게 해 주려고 퇴근하긴 했지만 아무 성과도 없이 지난 하루가 아까웠다. 김치전에 막걸리를 마시다 잠든 하루와 뭐가 다른가 말이다.


진짜 운동을 해야겠다.
나를 살려야겠다.


다음날.

허리 근육 이완을 위해 근육을 풀어주는 여러 동작을 취하고 땀이 나도 뜨거운 매트를 허리에 감싸고 있었던 결과일까? 어쩌면 약 기운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허리가 반은 구부러질 정도가 됐다. 몸에 근육이라곤 없는데 딱딱한 폼롤러로 허리를 누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으니 아픈 게 당연한 건데 참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전 엔진오일을 갈러 정비소에 갔더니 정비사 아저씨가 “차가 주인을 살렸다.”고 했다. 보통 5,000~7,000km 주기로 갈아야 하는 엔진오일인데 3만 km나 타고 찾아갔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불이 나도 벌써 났을 텐데 신기할 정도로 남은 오일이 깨끗하다고도 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나도 내 몸을 그렇게 생각했나?

내 몸에도 기적이 있을 거라고? 좋은 음식 한번 먹어주면 기운이 불끈 나고 없었던 근육도 막 생겨서, 운동으로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기적을 보여줄 거라고? 하지만 10분의 무리한 운동으로 허리가 나간 걸 보면 기적은 없었고 내 몸은 불나기 직전까지 간 게 맞았다.




운동하는 게 힘들고 불편하다고 버텨온 삶에 드디어 경고등이 켜졌다. 운동을 해서 불필요한 노폐물을 빼내고 살을 근육으로 바꾸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불이 날지도 모른다.


저녁이 돼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씻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엔 잘 만든 공원도 있고 멀리 가지 않아도 아파트 내엔 탄성 있는 바닥재를 깐 도보 운동 코스도 있다. 뛰지는 않더라도 집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보다는 걷는 게 나을 것 같아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만으로는 코스가 짧아 아파트 단지도 길게 돌아 걸었다. 오랜만에 야경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머릿속도 한결 가벼워졌다.


30분을 걷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갔다. 숨을 헐떡이게 운동이란 걸 한 게 얼마만인지. 움직이는 동안엔 힘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허리 통증도 완화되고 정신도 맑아졌다. 밀린 드라마 대신 밀린 글을 쓰고 밀린 책을 읽었다.


퇴근 후에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는 게 귀찮아 집안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었는데 이제 불편함을 감수하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몸 구석구석에 쌓인 불순물을 비우고 몸에 좋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새 엔진오일을 채워 출발이 부드러워진, 얼마 전만 해도 불나기 직전이었던, 내 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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