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만만치가 않다
가끔은 모든 게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모두의 상생을 위해서라는 거대한 전제 하에 눈치도 보고 비위도 맞춰야 하며, 건강하기 위해 혹은 아프지 않기 위해 운동까지 해야 하는 이 모든 상황들이 말이다. 유한한 삶을 이런 것들과 씨름하며 밀치고 내치는 작업들을 하다 보면 ‘도대체 뭘 위해 살아가는 걸까?’ ‘태어났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그 행위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거창한 서두를 시작하는 건 역시 운동을 해야 하는 (스스로) 납득할만한 명분을 찾기 위해서다.
살면서 가장 하기 싫은 걸 꼽으라면 운동이 단연 1등을 차지할 것이다.
매일 지옥 같은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지만 일보다 더 하기 싫은 게 운동일 정도다. 적어도 나한텐 그렇다.
회사에 재입사한 지 3년 5개월.
입사하고 이틀째부터 밤 9시까지 야근을 했다. 세 달 동안 저녁도 제 때 못 먹으면서 거의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했더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아침에 눈 뜨기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탈모에 눈썹까지 빠지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오르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다.
어느 날 어지럼증으로 몸이 휘청했고 빈혈 진단을 받았다. 빈혈의 원인은 업무 과다로 인한 피로 누적과 스트레스였다. 나름 전문직이었던 방송구성작가를 그만두고 한 직장에 자리 잡지 못하던 터라 이번만큼은 끝까지 버텨보리라 다짐하고 입사한 회사인데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이대로 10년을 일했다간 남아나는 머리카락도 없고 정신 건강에도 꽤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을 결심했었다. 그게 벌써 3년 전인데 아직까지도 미루고 있었던 운동이다.
그렇게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데도 운동과 친해지기 힘들었는데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 죽어도 하기 싫었던 운동을 드디어 꺼냈다. 나이를 잊고 싶지만 주위 친구들의 노화와 관련된 건강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점점 경각심을 갖게 된다.
갱년기로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아들은 사춘기라고 엄마한테 대들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밤마다 폭식을 했더니 버거울 정도로 살이 찌고 그러다 보니 각종 성인병으로 하루에 먹는 약만 4-5가지, 결국 암에 걸린 친구도 있다. 거기까지 가면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들먹이며 우울증까지 걸린다고 하니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모로 이겨내야 할 게 많아진다는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운동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봤다. 지금까지 살면서 운동이라고 해 본 건 다이어트용이 전부이다 보니 운동도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고기를 먹듯, 운동도 해 본 사람이 내게 맞는 운동을 찾을 수 있는 건가? 검색만 하다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마땅히 등록할만한 학원을 찾지 못해 운동을 계속 미루는 내가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올해 다 지나간다, 또다시 말로만 운동할래?라는 경고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프면 누가 나를 보살피겠는가?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이 정도면 운동을 해야 할 명분으로 충분했다.
명분을 찾았으니 운동과의 완력 싸움은 이걸로 끝인 거다.
SNS를 보다가 폼롤러 운동 영상을 찾았다.
긴장한 근육을 풀어줘 몸을 이완시키기에 좋은 운동 같았고 ‘진짜 운동’을 하기 전 워밍업을 위해 곧바로 폼롤러를 구입했다. 말랑말랑한 폼 대신 단단한 EPP 폼롤러를 선택하고, 운동기구가 올 때까지 영상을 반복 시청했다. 다음날 집 앞에 도착한 폼롤러를 들고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예전에 사용했던 요가매트를 찾아봤다. 얼마 전 이사하면서 분명 봤는데 어딨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간 하루를 또 공칠 것 같아 일단 러그 위에 폼롤러를 놓고 운동 영상을 플레이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첫 동작부터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영상을 볼 땐 그렇게 쉬워 보였던 동작이 내 몸으로는 전혀 구현이 안 됐다. 폼롤러도 너무 딱딱해서 몸과 닿는 부분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팠다. 내 몸이 이렇게 최악이었다고? 단순히 몸풀기용으로 시작하려던 건데 이러면 본투비 운동은 어쩌라고? 벌써 지치고 힘들었다.
잠깐이지만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고 떠올라서도 안 됐다. 운동을 해야 할 명분을 단 5분 만에 무색하게 할 순 없었다. 다시 폼롤러를 바닥에 길게 깔고 그 위에 누웠다. 처음부터 어떤 동작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폼롤러와 좀 친해져 볼까 하고. 척추뼈가 닿아 아팠지만 참고 버텼다. 1분도 안 됐는데 허리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몸이 경직되고 머리가 저렸다. 겨우 1분인데…
몸에 근육이 없다는 게 이런 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엄청난 걸 한 것처럼 몸이 아플 수 있다니. 몸 건강에 정말 무관심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폼롤러와의 짧은 만남으로 내 몸에 대한 진단이 끝나 버렸다. 그동안 근육의 힘으로 걸은 게 아니라 그나마 피가 돌고 있으니까 걸었던 거다. 이런 걸 산송장이라고 하던가? 다시 사람처럼 되고 싶다면 멈춰서는 안 된다. 폼롤러를 허리 밑에 깔고 10분을 버텼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목표한 시간을 채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허리가 약간 아픈 거 말고는 몸이 개운했다. 몇 분 안 되지만 운동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꺼내든 검은색 슬랙스를 옷걸이에서 내려 왼쪽 발을 들어 바지에 넣으려는데 ‘삐끗’하더니 왼쪽 허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왼손으로 엉덩이를 두드려도 보고 허리를 뒤로 젖혀-젖힌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도 정도 움직였을까?- 멈춰버린 하체를 풀어주려고 애썼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20대에 어린 조카가 멀리서 뛰어와 안겼을 때 그 자세로 허리가 굳어 한 달을 고생했었다. 옷을 입다 허리가 굳자마자 그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세수도 하기 힘들 정도로 허리를 굽힐 수 없었고 양말은 손이 아니라 발로 신겼으며 누가 옆에서 웃기기라도 하면 허리를 부여잡고 웃참하느라 곤욕이었다. 이번만큼은 제발 그 정도는 아니길. 운동은 시작도 안 했는데 허리가 나가버렸으니 3년 만의 결심이 또 물거품이 되는 건가?
불편한 걸 익숙하게 만드는 게 이렇게 고달파서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