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VS 불편함, 싸움의 서막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떤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아니 머리로 알기도 전에 이미 몸이 그걸 거부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소한 변화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받아들이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새로운 것이 불편한 게 어쩌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일 수도 있으나 점점 더 완고해지고 점점 더 고집불통이 되어감을 느낀다.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이렇게 대대적으로 떠벌리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하려고 저러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할 수 없는 것을 한다는 것은 익숙함을 탈피하는 일이다. 이미 익숙한 것이 편한 나이가 된 내게는 필요한 걸 알면서도 필요한 걸 찾는 노력을 하는 데까지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론만 빠삭하여 가장 움직이기 쉬운 입만 살아서 뻐끔대고, 정작 몸은 뻣뻣하게 요지부동이어서 말과 행동이 다른 늙은이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5시에 기상하기 100일째, 하루에 30분씩 근력 운동하기, 금연한 지 200일째, 1년 동안 책 300권 읽기 등 자기만의 규칙과 룰을 정해 꾸준히 실천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걸 몸에 익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유혹을 뿌리치며 참아냈을지, 계획대로 이뤄내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노력을 했을지 짐작하기에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연극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기 위해 밤샘 연습을 하던 스물한 살, 스페인까지 날아가 한 달 동안 산티아고를 향해 800km를 걸은 서른여섯 살, 그때의 의지와 열정이 지금의 내게 없는 이유는 편안한 것을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일까 수십 번을 되묻기 때문이다.
불편한 걸 꼭 해야 돼?
지금처럼 살면 안 돼?
밥을 굶는 것도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늘어놓다 보면 묘하게 설득이 되고 결국엔 미루게 된다. 그렇게 미루고 미룬 일들을 모아 길게 늘어놓으면 스페인 횡단 길을 수십 번 오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의지박약에 열정의 그림자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산다고 밥을 굶는 것도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 불편한 열정에 불꽃을 틔워보려 한다. 그것도 열정 축에 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소소하지만 나에게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고집불통 어른을 유연한 어른으로’ 만들고자 한다.
첫 번째 과업은 운동이다.
운동이야말로 꼭 필요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다.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일정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나름 자기 관리를 하는 삶을 살았다. 몸무게가 1kg 늘면 1kg를 빼기 위해 덜 먹고 더 움직여 원상태로 복귀시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운동은 늘 열외였다. 운동을 하지 않고 살을 빼려면 늘어난 체중이 1kg를 넘으면 안 됐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굶어야 했으니까.
체중 유지만으로도 관리 잘하고 있는 거라고 나름 자부를 해왔는데, 어느 날 깜짝쇼 하듯 늘어진 뱃살이 뭘 해도 빠지지 않고, 충분히 잤다고 생각해도 하루종일 몸이 천근만근, 뱃살뿐 아니라 몸에 있는 살 전체가 땅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더니 허리를 펼 줄 모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운동이 아니면 예전의 몸을 기대할 수 없겠구나. 점점 빠져나가는 근육이 어느덧 바닥을 보이면 회생 불능이겠구나. 싶었다.
체중 관리와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히 체력 저하는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 먹을 힘이 없을 정도로 지친다. 저녁을 먹으면 더 노곤해진 몸은 눕는 것 이상 편한 자세가 없고 그러다 보니 소화도 안 되고, 뱃살만 늘어날뿐더러,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의자에 앉는 게 일주일에 한두 번 될까 말까다. 그 상태로 아침을 맞으면 한심한 나에게 비난을 퍼붓고, 오늘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라도 하자고 다짐하지만 퇴근하면 또 같은 하루의 반복이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 드라마 <미생> 중
드라마 <미생>을 열 번 넘게 돌려봤는데도 여전히 체력을 기르는 일에 소홀한 나는 ‘구호’만 외쳐댄 꼴이다.
그래서다. 구호로 끝날 정신력이라면 외치느라 목만 아플 뿐이니까.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워 퇴근 후에도 꼿꼿하게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이루고자 하는 일을 끝내 이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