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단 한번뿐이니까
누구에게나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삶의 형태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한 때 꿈꾸는 삶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엄마로서,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현재와 미래를 꾸려가는 것.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삶을 꿈꿨지만 그 꿈이 파혼과 함께 사라진 후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방황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며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실패한 인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했다. 그러니 뭘 해도 흥이 안 나고 뭘 해도 성공할 거라는 기대가 없고 뭘 해도 내 인생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감옥에 가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절차이며 과정이었다.
혼자 사는 40대 미혼 여성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직무를 맡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월급이 없으면 각종 공과금이 밀릴 수밖에 없는 서민. 왕년에 글 좀 써봤다고 진짜 작가가 되는 꿈을 포기 못하고, 친구보다는 혼자서 글 쓰는 게 더 좋은 내향형 인간이며, 30대 중반에 파혼한 이후로 남자친구도 없이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누가 봐도 별 볼일 없는 돈 없고 나이만 많은 여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언제까지 나를 실패한 사람이라는 틀에 가둬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인생을 살 것인가?
내게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 아주 또렷하고 명확해서 그 가치관에 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보거나 간혹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화가 나기도 한다.
의미 없는 행동, 의미 없는 말, 의미 없는 하루가 내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며, 꼭 넘어가야 할 높은 산이다. 매 순간 의미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누군가 열심히 살고 있는 내게 ‘네가 하고 있는 일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뭐라고.’라고 말하면 그동안의 내 삶이 허공으로 흩뿌려져 공중분해되어 버리는 경험을 한다. 한동안 참지 못할 서러움과 충격으로 ‘스스로 만든 감옥’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놀라운 건 자가치유력이 강한 편이어서,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결국 ‘의미를 찾아’ 다시 쇼생크 탈출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탈출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 감옥에 갇혀 있는 ‘의미 없는 삶’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분명 이 생을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가끔은 부족하고 가진 것 없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도 단 한 사람, 단 하루, 단 한순간이라도 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면 그 작음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큰 사람이 되려는 욕심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작은 것 하나로도 적어도 그 순간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나만 부끄럽다고 업신여기지 않으면 내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걸, 아니 누구보다 좋을 수 있다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전히 가슴속에 묻어둔 질문이 많고 언제나 삶에 의문을 갖고 있지만 많은 질문과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왜냐면 궁금하지 않으면 알고 싶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조금이라도, 아주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면 지금의 나를 믿고 나아가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 삶이 모범답안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부러워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면 되니까! 그게 경제적인 부나 성공이라 일컬어지는 가시적인 것이 아닌 ‘당당하고 멋있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닮고 싶게끔.
오늘부터 멋있는 사람이 돼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