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불편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을 찾아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집으로 돌아와 취하는 휴식은 그날의 고단함을 녹이는 달콤한 시간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쉬어야 하지만 과연 그런 쉼만이 유일한 달콤함일지 물음표를 찍어봤다.
한창 드라마를 공부할 때는 매일 스터디카페로 퇴근했고 그곳에서 꿈꿨던 시간들이 행복했다. 너무 성과에만 집착했기에 공모전마다 탈락하는 수모를 견디기 어려워 결국 드라마 쓰기를 포기하고 스터디카페 출입도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때만큼 글 쓰는 게 재밌고 글 쓰면서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퇴근해 보려고 한다.
지난 2월에 이사한 아파트 바로 옆에 복합커뮤니티센터가 생겼다. 도서관과 수영장, 체육관이 있는 다목적 문화 공간이다.
수영장과 체육관은 평일 낮에만 운영되어 나 같은 회사원은 이용이 불가하지만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열려 있어 퇴근 후 2-3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노트북도 빌려 쓸 수 있으니 맨몸으로 가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필요조건)과 책을 읽고 글을 쓸 준비가 된 나(충분조건)가 모두 갖춰졌다. 도서관이 필요조건인 이유는 집 안에는 나를 쉬게 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많은 유혹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데 집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조건을 갖췄는가? 여기서 문제는 단 하나, 집 밖을 나가느냐 나가지 않느냐다.
집을 나가기 위해 가장 피해야 할 유혹자는 ‘소파’다.
이사하면서 신중하게 골라 장만한 3인용 소파는 적당한 쿠션감에 침대만큼 편안한 널찍함으로 한번 앉거나 누우면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다. 6시간을 누워 자도 허리가 안 아플 정도로 완벽한 소파를 산 것에 한껏 만족스러웠는데 지금은 최대의 적이 된 것이다. 물론 소파에서 써낸 글도 많다. 워낙 머무는 시간이 길어 앉은 자세로 꼬박 2시간 동안 글을 쓴 적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도서관으로 가기로 한 이상 평일에는 소파와 안녕을 해야겠다.
소파 다음은 ‘TV’다.
밥을 먹을 때 TV를 켜는 건 여러 안 좋은 습관을 낳았다. 잠깐 보고 끄는 게 쉽지 않아 밥 먹던 자세로 한두 시간을 앉아 있게 되고 그럼 더욱 집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아져 결국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TV는 주말용으로.
나 자신을 단속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작은 일조차 강아지 훈련하듯 ‘먹어!’ ‘앉아!’ ‘기다려!’라고 명령하고 꾸짖어야 하니 어쩐지 어이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보면 그걸 지켰을 때, 그걸 해냈을 때 얻게 되는 보상이 꿀 같다. 과정은 지난하지만 결과적으로 성장을 위한 일종의 훈련이니까.
평일이라고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나만 안 다녔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 카페처럼 꾸며진 열람실은 의자는 불편하지만 자세를 곧게 만들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 시너지가 상당하다. 그들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동반 상승하는 느낌이랄까?
집 앞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꿈이 이루어졌으니 그 꿈에 대한 보답으로라도 도서관에서의 하루 3시간을 감사하게 보내려 한다.
몸에 좋은 약처럼 적어도 내겐 몹시 쓰고 불편한 일들을 골라하다 보니 요즘 몹시 피곤하다.
어쩌다 내가 이 나이에 편안한 삶 대신 불편함을 살기로 작정하고 몸을 혹사시키게 됐는지 문득문득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내 몸을 괴롭히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 가려운 곳을 골라 벅벅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하기도 하고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미용실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식당 사장님이 했던 말이 머리에 쏙 박혀 떠나질 않는다.
글을 읽고 쓰는 걸 너무 좋아해서
도서관에 가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가슴이 뛸 정도로!
하루종일 식당 주방에서 일하느라 잠시도 짬을 낼 수 없어 지금은 그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해 슬프다는 그녀에 비해, 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