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Why?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어른들의 말속에서 늘 궁금했다.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정답을 알게 될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에게 언제든 답해줄 수 있는 정답 노트라도 갖고 있는 걸까?
하지만 어른으로 보이게 성장한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저렇게 살아야 하는지 갈팡질팡한다.
당신은 정답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어른인가?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에는 종류가 있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살면 돼’라는 정답 확신형과 ‘그렇게 살면 안 되지만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는 모르겠어’라는 정답 모호형, ‘그냥 그렇게 살지만 않으면 돼’라는 정답? 강요형.
그들은 정답을 알고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정답이 여러 가지여서 헷갈리는 걸까?
애초에 정답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로 강요만 하는 걸까?
같은 질문에도 다양한 답변을 듣게 되는 삶에 대한 답은 그래서 말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궁합이 맞았을 때 정답처럼 보인다. 누구 하나라도 생각이 다르면 그건 ‘삐이’ 오답이다. 그런 각도로 본다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에 대한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해도 될까?
이 문제를 파고들었던 많은 성현들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답은 없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가족여행을 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책을 고르는 형부에게 말했다.
형부다운 책만 읽으시네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부처의 가르침이 옳다고 믿고 있는 형부가 제목만 봐도 불자의 냄새가 나는 책들만 고르고 있어 한 말인데 순순히 인정했다.
책을 고를 때마다 생각해. 내 가치관을 확정 짓는, 나랑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책만 읽고 있구나. 더 넓은 사고는 못하겠구나.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던 걸까?
사람들은 정답을 모르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 비슷한 답이 맞는지를 찾아 헤매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와 정답을 공유하며 역시 이게 맞았다고 확신을 하게 되는 ‘정답에 확신을 주기 위한 절차’만 밟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내게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고 가치관이 있지만 그게 전적으로 옳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와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의 말을 듣다가 방향을 틀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옳고 당신이 그르거나 당신이 옳고 내가 그른 게 아니라, 추구하는 삶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도 옳을 수 있고 저것도 옳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에 정답은 없다.
각자 추구하는 삶이 다를 뿐.
어떤 삶이 맞는지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완전하지 않은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함과 불완전함이 모인 삶은 전체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똑 떨어지는 정답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에 정답이 없다고 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정답이 없다면 내가 사는 삶도 오답은 아닐 테니까.
혹시라도 세상 어딘가에 정답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그 정답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 헤매고 있고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해서 옳은 방향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답이 없다고 해서 오답만 수두룩한 것도 아닐 것이다. 누가 정해주고 그 길로만 가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면 자기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삶이 정답이라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다양한 삶들을 들여다보며 버릴 건 버리고 본받을 건 취하며 자기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아이들의 질문에 정답을 주진 못해도 방향은 제시할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정답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삶!
흔들리고 넘어져도
자기만의 답안지를 채울 수 있는 삶!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