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삶은 예습, 연습, 복습, 어떤 모습일까?

어른의 Why?

by 다시봄

예전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것 같은데?

저 사람과 같은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기시감(旣視感)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분명 처음 있는 일인데 언제,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말이다.

기시감은 전생이 아닐까, 시간의 물리적 변형이 아닐까, 미래의 예측이 아닐까 등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기시감을 느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사는 삶의 예습 혹은 연습 아니면 복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삶에 깃든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처음 온 장소인데 분명 예전에 와본 곳 같아서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고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자신이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친구가 저런 대답을 했던 게 기억나거나

누군가를 소개받아 인사하며 상대방이 독특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 상황이 예전에도 한 번 있었던 것 같아 소름이 돋는


기시감은 뜻밖의 상황에서 불쑥 나타나 당황하고 소름 돋게 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착각이며 뇌가 기억을 짜 맞추는 과정일 뿐일 수도 있지만 기시감을 느끼는 동안 나는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며 오감이 살아나 총출동하여 ‘살아있음’을 느낀다.


기시감이라는 반가운 아이가 찾아오면 그 순간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른다.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에게는 방금 소름 돋았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내 속에서는 시원하고도 따뜻한 바람이 일렁인다. 그 장면이 통째로 내게 다시 와서 한 번 더 살아가게 하는구나, 예습도 없이 흘러가버리면 끝나는 삶인 줄 알았는데 다시 연습하게 하고 복습까지 하게 해 주는구나, 신이 내게 주고 싶었던 선물을 이렇게 툭 던지고 가는구나.



나만 겪는 일이 아닌데도
특별한 경험인 것처럼 소중하게 그 삶을 대하게 된다.



반가운 아이가 왔다 가면 한동안은 사는 게 재밌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나중에 또 찾아올지 모를 기시감의 전조가 아닐까, 그렇다면 계속 예습하고 연습하고 복습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신이 반짝 선물을 준 게 아니라 매 순간 선물꾸러미 속을 헤엄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막고 향후 일어날 일을 예측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뇌의 일반적인 보호 본능의 발현일 수 있겠지만 기시감을 잘 활용하면 평범한 삶에 특별함 한 스푼을 얹는 일이 될 것이다.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미리 연습하는 삶을 살면 좋지 않은가?





기시감이 자주 출현하는 곳이

새로운 여행지,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에게서,

예지몽처럼 꿈속에서,라고 하지만 해당사항이 없다 해도 충분히 기시감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의 삶이 기시감의 한 축이라고 믿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회, 지루하지 않게 살 기회, 최선을 다할 기회, 삶이 반짝일 수 있는 기회라고 믿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시감이라는 단어만 빼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을 더 잘 살아낼 기회를 스스로 찾아 듬뿍 안겨주는 것이니 말이다.



힘들고 지칠 때,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을 때,

아니 매 삶의 순간을,

예습하고 연습하고 복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어 보자.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