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Why?
흑역사는 잘라내고 전성기는 확대하고
누구보다 나를 돋보이게 편집하여
한 편의 잘 정돈된 영화 같은 인생을 만들 수는 없을까?
솎아낼 것 솎아내고 순서도 바꾸는 인생 편집이 가능한 일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자르고 옮기고 클로즈업하고 싶은 장면이 있는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살았든
수십 번을 말해도 질리지 않는 즐겁고 화려했던 날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슬프고 아픈 날들이 있을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즐겁고 화려했던 전성기만 남기고 슬프고 아픈 기억은 편집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잘라버리고 싶은 날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싹둑 잘라 기억에서 없앨 수 있다면, 논에서 피를 뽑아내듯 솎아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소설 <모렐의 발명>에서 모렐은 ‘영원’을 살 수 있는 영사기를 발명하여 실존했던 사람들의 영상을 찍어 그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똑같은 행복을 반복하여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 안에선 사랑도 기쁨도 행복도 영원하며 끝도 없이 반복된다.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
관객에게는 끔찍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매우 마음에 드는 일이다.
주인공도 처음엔 그 기괴한 발명품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포스틴에 대한 마음이 커지자 영상 원본에 포스틴과 자신의 모습을 덧입히고 편집해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범죄자였던 실제의 자신은 서서히 죽어가면서 영상 속에서만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산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모렐의 발명품을 이용해 편집한다면 당신도 다 잘라내고 나서 영원히 반복될 수 있도록 남겨놓고 싶은 장면이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설렘은 남기고 이별은 지우고
젊고 예뻤던 순간은 남기고 늙고 병든 날은 지우고
영예로운 날들은 남기고 고통스러운 날들은 지우고
밝고 좋았던 날들은 남기고 어둡고 궂은 날들은 지우고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편집해서 잘라버리면 행복이 행복할까? 그렇게 밝은 날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잘라버리면 밝음이 과연 밝게 보일까?
우리는 불행하고 어두웠던 날들을 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날들이 없었다면 행복하고 밝은 날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모렐의 발명품은 지금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에게 구원이 될지 모르지만 당장 삶을 끝낼 게 아니라면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어둠이 왔다가야 빛이 눈부시다.
우리는 이미 삶을 편집하며 살고 있다.
아주 잘라낼 수는 없으니,
좋은 것들은 클로즈업하여 자주 꺼내 보고 좋지 않은 것들은 가림막으로 가려 보이지 않게 위장한다. 그렇게 해야 더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삶이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을 살고 있는데 편집해 버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괴로울 필요가 있을까? 되돌아갈 수 없는 영광의 때만 곱씹는다고 지금이 달라질까? 행복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과거의 행복했던 때만 가슴에 채우고 살아갈 것인가?
행복하기 위해 삶을 편집해야 한다면
아프고 괴로웠던 날들을 지나왔기에 즐거움과 영광의 날이 올 수 있음을 기억하고
애써 힘들었던 날들을 지우기보다 지금 그리고 내일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믿는다면
오늘이 더 귀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 어른의 Why?
화 :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 어른의 Why?
목 :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금 :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사ㄹㅁ
토 : 어른의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