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어릴 때 언니들과 같이 쓰던 우리 방 책장에는 책이 빼곡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전집이었다.
위인전집, 고전 소설 전집, 백과사전 전집 등 전집 사는 걸 좋아했던 엄마의 책 컬렉션이 20대 초반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책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었던 외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빌려온 책을 모조리 읽은 엄마와 엄마가 사준 전집 포함 잡다한 책을 읽고 자란 나는 서재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들을 채워놨다. 나름 분류를 해놓기는 했지만 어디에 꽂아야 할지 애매한 책들도 꽤 있다.
특정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기보다는 이것저것 두루두루 읽기를 좋아하는 취향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어느새 잡탕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긴 했다.
한 때 다른 책은 다 걸러내고 소설만 읽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수백 권의 소설을 읽고 나니 난 소설은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기도 전에 포기를 한 것이다. 신춘문예를 앞두고 있어서 단편소설을 한 편 쓰긴 했지만 써보니 더더욱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인물이 자꾸 소설을 쓰는 내가 되었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이름만 인물 것을 갖다 쓰고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고 있었다. 내 속을 드러내는 게 싫고 방법도 몰랐던 때여서 인물 묘사의 디테일도 부족했고 행동반경에도 한계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신춘문예도 떨어졌고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 쓰고 싶었고 영상 쪽으로 눈을 돌려 영화와 드라마 쓰는 일에 몰두했다. 소설과는 분명 달랐지만 이야기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깊이가 부족하고 재미만 추구하는 내 글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장르를 알 수 없는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표현만 그럴듯한 잡탕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내 안에 내재된 기본 자산이 어릴 때부터 잡탕을 읽고 자란 덕에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게 편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다 섞어 놓아야 제 맛이 나는 ‘잡탕’처럼, 모든 학문과 비학문까지 모두 섞어 놓은 글을 써야,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어린 나까지 삼대가 모두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지도.
난 이제 내가 뭘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주어진 과제를 해내고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매일 다른 연재를 지속하고 있어 매일 다른 머리를 갈아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반년이다. 반년이면 하루에 3시간씩 계산해도 540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겨우 그걸 쓰고 내가 뭘 잘 쓰는지 알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뭘 잘 쓰는 사람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 계속 잡탕 글쓰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게다가 이번에 오리지널 잡탕 연재를 시작하기도 했다. 뭘 쓰게 될지 나도 모르는 그런 연재를 말이다.
이렇게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질리도록 이것저것 쓰고 또 쓰다 보면 그중 하나는 보물이 되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믿고 있다.
나와는 다르게 한 장르를 깊이 있게 써내는 작가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독서 태생이 잡탕인 나는, 그들을 따라잡기보다는 그들의 글을 독자로서 잡탕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를 택하련다. 내가 쓸 글의 밑거름으로 기꺼이 쌓아놓겠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갑니다]
수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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