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1년에 두 번씩 만나는 작가모임이 있다.
작가(소설가) 1명, 작가지망생(나) 1명 그리고 작가 되기를 포기했지만 작가적 성향이 누구보다 강한 2명이 만나는 모임이다.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공부를 하면서 만난 그들과의 만남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들을 만나러 KTX를 타고 안동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오랜만에 잡지를 읽었다.
<KTX매거진>
한국을 소개하고 한국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월간 잡지인데 열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잘 만든 잡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고 싶고 먹고 싶고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잡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서일 것이다.
‘알아두면 쓸데가 있고, 새겨두고 싶은 문장이 있는’ 잡지를 볼 때마다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는데 큰 힘을 준 그것에 감사하게 된다.
한때 잡지 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다.
경기도 홍보 잡지였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경기도 지역에 대한 충분한 자료조사를 하고, 직접 방문해 사진을 찍고, 어디에 어떤 내용을 넣을지 고민하고, 짧은 기사를 쓰고, 각 파트마다 제목을 다는 일이었다.
여러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 해야 하는 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었지만, 잡지 기획이라는 생소한 일은 나의 작가적 촉을 곤두서게 만드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기획안은 통과됐지만 잡지로 발행되지는 않은 유물 같은 기획서를 아직 보관 중인데, 가끔 꺼내보면 젊은 나의 혼을 갈아 넣은 문장과 카피가 꽤 쓸만하다.
20년 전인데도 그때의 내가 쓴 글은 지금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그 후 충무로에 있는 영상작가교육원의 웹매거진도 기획했다. 매거진은 영화 소개와 영화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매거진에 담길 내용을 풍성하게 엮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았는지 모른다.
한창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임에도 시나리오보다 매거진 만드는데 더 열중했었다.
그때 유명 영화배우와 감독들, 시나리오 작가들을 많이 만났다. 단지 작가지망생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그들을 영화 잡지를 만드는 관계자라는 명함으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배우 이병헌과 류승완 감독이 기억에 남는다. 잡지 만드는 관계자로 만났지만 작가지망생임을 밝힌 내게 대배우와 감독은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누구나 지망생 시기가 있고 그 시기에 꾸준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지망생이 아닌 작가로, 배우와 작가, 감독과 작가로 만나게 될 날이 올 거예요.”
아직 꽃피지 못한 작가라는 봉우리를 틔워주기 위해 그들이 가진 최고의 조언으로 나를 일으켜 주었다.
지금은 폐간된 가톨릭잡지 ‘비타콘’에는 1년 동안 내가 쓴 글을 싣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후 진짜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글쓰기 공부를 할 때였다. 의욕이 넘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 상태였던 나는 매달 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밝고 유쾌한 글을 쓰는 작가였다.
그래서 잡지는 내게 이름만으로도 값진 선물이다.
잡지를 보면 잡지를 만들 때의 내가 떠오르고
잡지의 문장을 읽으면 그 문장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을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느질을 한다, 힘을 빼고.
힘들면 멈춘다. 나중에 다시 이어서 하면 되니까.
이것이 우리가 지치지 않고 즐겁게 바느질하는 비법이다.
적당히 하고 멈추는 것,
더 하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것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렇게 과정을 즐기는 것,
우리는 이를 ‘치앙마이 정신’이라 부른다.
- KTX매거진 10월호에서
늘 자차로만 다니던 작가모임에 열차를 이용하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충무로에서 만난 그들과 충무로에서 작업했던 잡지의 추억이 어우러져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힘이 그곳에도 있었음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이었으니까.
아! 잡지의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글 쓰는 사람이 잡지를 읽으면 그 안의 다양한 시선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생소하고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불꽃 튀는 경험은 나를 더 호기심 많은 작가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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