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글 쓰는 일은 매번 어렵다.
지금이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글을 공개하지만, 예전에 나만 보는 글을 쓸 때는 이 어려운 걸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다행히 그런 순간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었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다.
드라마를 공부할 때 내 롤모델은 노희경 작가였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닮고 싶었고, 사람을 오래 바라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대사와 행동 묘사를 배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말수가 적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좋았다.
친구가 별로 없을 때는 친구들 노는 걸 봤고, 집안이 불우할 때는 집을 나와 길 밖에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것이 도움이 됐다. 사람 관찰할 때 365일 캐릭터를 관찰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
캐릭터들은 매일 마음과 장면이 바뀐다.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따라가고 열명 스무 명 나오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수시로 쫓아가는 것이 힘들지 않다.*
작가가 가진 시선과 대사의 생생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관찰한다는 건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그를 꾸준히 지켜보는 일이 즐거워야 하고, 다각적인 면을 보는 데 지치지 않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걸 잘 못했다. 사람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좋은 면만 보고 싶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보이면 슬며시 멀어졌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여러 마음이 뒤섞인 존재다.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걸 다 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방법은 ‘나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어떤 이유를 대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모르면 타인에게도 그런 시선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은사들의 얘기와 친구들의 얘기를 귀담아듣기를 바란다.
내 발언이 이유와 근거가 있듯 내 친구도 나한테 지적할 때 근거가 있다. 그 근거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파고 또 파야 한다.
조언에 대해 고개를 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짱 뜨기를 바란다. (중략)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에 너무 겁먹지 마시라. 여러분의 부모, 형제와 자매들도 살았던 세상이다. 겁먹지 말고 먼저 마음을 열어라.
나는 마음 열었는데 상대는 열지 않는다면 그때 돌아서도 늦지 않다.*
사람을 관찰하는 일에는 반드시 ‘대면’이 필요하다.
대면은 곧 갈등을 낳고, 그 갈등을 마주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성격이자 개성이다.
상대방의 반격에 적극적이지 않고 도망가기 바쁘면 그를 알 수가 없다. 고개를 돌리지 말고 파고 또 파는 맞짱 뜨기 기술을 써야 그를 더 깊이, 더 많이 알 수 있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맞짱 뜨라.
나처럼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연인과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깊어지듯, 사람과의 마찰도 결국 이해로 가는 통로다.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결국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사람을 깊이 보는 사람이다.그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글이 세상과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나도 그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글이 힘들고 종종 외롭지만, ‘이 믿음만큼은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다시 노트북 앞에 앉힌다.
최근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를 다시 찾아봤다.
김혜자, 고두심의 연기야 말이 필요 없지만 이병헌과 이정은, 박지환과 최영준이 만들어내는 극중 캐릭터도 참 매력적이다.
특히 이병헌이 만들어낸 동석은 다시 봐도 놀랍다.
엄마 앞에서는 투덜대는 어린아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 순정남, 그리고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보통 사람.
그가 연기하는 인물 속에는 우리가 모두 가진 복잡한 마음이 들어 있다.
그걸 바라보며 생각했다.
글은 결국 사람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나를 더 깊이 관찰하고, 그만큼 타인도 깊이 보면서 사람을 더 자세히 알아가는 일이라는 걸.
그 배움과 앎으로 글쓰기와 맞짱 뜰 수 있는 힘을 키워야 비로소 ‘사람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사 원문 - News1 2022.2.21
'삶의 빛' 수상 노희경 작가 "글쓰기의 중압감에 짓눌렸을 때 드라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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