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지난번 친구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된 나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네가 쓴 글을 누가 읽어? 유시민도 김영하도 아닌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래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묻게 된다.
“내가 책 내면 누가 사서 볼까? 너라면 살 거 같아?”
그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지 않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내…
20년 전 영화 시나리오를 같이 쓰던 동기를 만난 지난 모임에서 숙소 근처에 있는 북카페에 들어갔다가 매대에 진열된 최신작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뒤척이던 나는 같은 질문을 했다. 같이 간 동생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 유명 시나리오 작가와 다음 작품을 같이 준비하던 꽤 유능한 작가지망생이었다.
“있잖아. 넌 내가 에세이 쓰면 사서 읽을 것 같아?”
“으응? 누나가 쓴다는 게 에세이였어?”
“뭐. 이것저것 쓰는데, 에세이도 있어. 내 친구 말로는 유시민도 김영하도 아닌데 누가 읽냐고 그러더라?”
머뭇대는 동생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친구와의 일화를 먼저 꺼냈다.
“친구가 틀린 말 한 건 아닌데…“
이번에도 역시 그런 건가? 또 타이틀이 문제인 건가?
주눅이 든 내게 동생은 책이 어떻게 팔리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해줬다.
내가 쓴 책이 어떤 식으로든 출판사를 통해 출간이 되었다고 하자.
서점에 진열된 내 책을 들춰보던 누군가가 한 문장에 매료되어 그 책에 쏙 빠져든다. 그리고 그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린다. SNS의 주인공이 유명한 인플루언서면 베스트셀러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출간이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누구에게 읽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요지였다.
유명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다면 누가 쓴 책이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고.
여기서 핵심은 ‘글을 계속 쓰고, 잘 쓰면 된다!’였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희망이 있는 결론이어서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작가를 포기했던 동생은 자영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최근 다시 글을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신문물에 관심이 많은 동생은 만날 때마다 20대 초반이나 알법한 새로운 미래 기술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뽐냈는데, 이번에는 AI와 협업하여 장편의 웹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AI에게 뭘 묻고 도움을 받는 걸 극도로 꺼려했던 나는 그가 도대체 어쩌다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키는 AI에게 의존하게 됐는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을 수록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 들었고, 약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AI가 자기가 쓰는 소설의 인물들을 ‘이미지화’해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사까지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쓴 대사를 내가 만든 인물이 직접 말하는 걸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직 초창기여서 긴 대사는 못하지만 곧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글을 다듬어주고, 맥락을 잡아주고,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인물까지 창조해 내는 능력이 있는 AI인 것이다. 대신 글을 써달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활용도가 꽤 높은 신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작가가 되길 포기한 동생을 다시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홍보할 방법은 글을 잘 쓰는 것뿐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잘 쓸 방법으로 AI든 뭐든 이용할 수 있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AI가 꺼려졌던 건 의존하게 되고, 생각을 덜 하는 인간이 될 게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를 믿는 게 아니라 나를 믿고 취할 것만 취한다면 글 쓰는 내게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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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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