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오징어 게임 아님 주의

by 다시봄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그곳만 바라보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실천하고, 나아갔다. 하나의 목표는 흐트러진 삶을 정리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부모님은 가난했지만 나는 결코 가난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풍요를 누리며 살았다.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엄마가 삶아준 달걀을 먹으며 배 따시게 엎드려서 책을 읽었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무, 고구마, 복숭아 서리를 하며 배부르게 놀았고, 학교와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독차지하며 빛나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사이사이 작은 목표들을 세워 목표를 이루는 재미를 알아갔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의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내 선택이 인생을 뒤흔들 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의 직관에 따라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택 때문에 후회가 남기 시작했고 점점 선택의 기로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후회와 미련을 잔뜩 짊어지고 떠났던 산티아고 가는 길이 고맙고 행복했던 이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곳. 화살표만 따라가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곳. 길 위에서 선택해야 하는 건 먹을까 말까, 쌀까 말까, 쉴까 말까라는 그야말로 본능에 따른 선택만이 전부였던 곳. 후회와 미련이라는 짐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선택의 고민 앞에서 아무런 짐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곳.


그래서 결심했다. 힘들고 죽을 것 같아서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길 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걸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그때부터 내게 있어 선택이란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선택이 아니라,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대한 선택으로 바뀌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작가가 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글만 쓸지 회사를 다닐지 선택하는 그런 선택이 아니라, 글이 징그럽게 안 써질 때 이렇게라도 쓸 수 있음에 감사할지 복장 터진다며 술이나 마실지를 선택하는 그런 류의 선택 말이다. 행동의 선택이 아니라 마음의 선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의 선택!
‘어떤 삶을 선택할까?’는 곧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선택할까?’를 의미한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평정심을 잃게 되는 요즘, 더욱더 이런 마음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납기일을 지키지 않는 외주업체 때문에 흐트러진 계획을 바로 잡느라 하루 종일 시달리고,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대리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다가 집에 오면 별의별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라 나를 두 번 괴롭힌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 무렵이 되면 이 모든 괴로움도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소중한 만남과 인생을 미간을 찌푸리는 걸로만 견디기에는 내게 주어진 하루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기왕이면 마음의 선택을 좋은 방향으로 하는 게 낫지 않은가? 라고.


아침이 되면 또 다짐을 할 것이다.

“오늘 어떤 마음의 선택을 할지 잘 결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