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다시봄 Oct 16. 2021

그녀의 이름은 시사모

지금, 여기, 우리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아픔이 있고 때론 그 아픔을 꽁꽁 끌어안고 사느라 ‘지금’을 잃고 살아간다. 과거 때문에 괴로운 현재의 나에게 미래란 없다. 과거만 있을 뿐이다. 그 시절의 그녀가 그랬다.




그녀, Y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연극 공연에서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 같이 일하는 피디와 함께 지인의 연극 공연을 보러 갔다가 불쑥 나타난 그녀를 만났다. 피디와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인데 갑상선 암 수술 후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낯선 사람과의 동석이 불편했지만 내색도 못하고 있다가 얼른 연극이나 보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눈치 없는 피디는 같이 소주나 한잔 하자며 막무가내로 선술집에 데려갔다. 초면인 사람과의 술자리가 내키지 않았지만 몸이 아프다는 그녀가 흔쾌히 합석한다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갔다.


Y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시종일관 헤헤호호 웃으며 이야길 했다. 하지만 난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았다. 웃음 뒤에 묘한 어둠이 느껴졌달까? 게다가 피디와 이야기할 때는 헤헤호호 했지만 내가 묻는 질문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대략 이런 식이다.


“작가세요?”

“아뇨.”

“그럼... 피디?”

“아뇨.”

“성우에요. 딱 성우잖아, 목소리가.”


피디가 대신 대답했다.


‘지가 왜 대신 대답해? 그리고 저 여잔 대체 뭐야? 왜 온거야?’


짜증이 나서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셨다. 한참을 둘이서만 얘기하더니 그녀가 내게 처음으로 한마디 건넸다.


“술 잘 마시나보다.”


어라? 반말이다.


“이작가 완전 주당이야.”


피디가 답한다.


“왕년엔 나도 주당이었는데! 옛날에 나랑 만났으면 우리 잘 어울렸겠다.”


‘도대체 뭐가 잘 어울렸겠다는 말일까?’ 대답 대신 소주 한 잔을 꼴깍 삼켰다.


“우리 나중에 같이 한잔해요. 지금은 많이 못 마셔서.”

“그래, 이작가. Y씨 엄청 멋진 사람이야.”


일할 땐 말도 없는 피디가 그 날 유독 말이 많았다. 제발 저 입은 아이디어 낼 때나 썼으면... 그렇게 재미 없는 술자리는 참 오랜만이었다.


일주일 후, 프로그램 전체 회식이 있어 방송국 근처 식당에 갔는데 Y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알은체를 했다.


“이작가님! 여기 여기. 내 옆에 앉아.”

“네?”

“그래, 이작가. Y씨 옆에 앉아요.”


도대체  인간은  여자를   부른 걸까?’


오늘 회식도 망쳤구나 생각하며 Y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내 옆으로 바짝 몸을 당겨 앉더니 말했다.


“이작가님 보고 싶어서 왔는데, 나 안 반가워?”

“네... 반갑죠.”

“정말? 그럼 우리 짠 할까?”

“아... 네.”


일주일 전만 해도 한 시간 동안 소주 한 잔을 나눠 마시던 그녀가 완샷을 했다.


“술... 마셔도 돼요?”

“원래는 안 되는데 오늘은 특별히 이작가님이랑 마시고 싶어서.”


참 넉살도 좋다.


“나 첫 눈에 이작가님한테 반했는데... 몰랐지?”

“네? 저... 여자예요.”

“여자가 꼭 남자한테만 반해야 되나?”

“네?”


'이 여자 혹시...' 놀라서 그녀에게서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그러잖아도 별론데 갈수록 태산이다.


“자자!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하겠습니다. Y씨가 다음 주부터 다시 일하기로 했습니다.”

"와아아아!"


나를 뺀 제작진들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녀가 날 보며 웃었다. 이제 이 여자를 매주 만나야 한다. 큰일났다.


그 후로 우리는 녹화가 있는 목요일마다 술을 마셨다. 회식 날부터 본색을 드러낸 그녀가 넙죽넙죽 술도 잘 마시고 분위기도 잘 띄웠기 때문에 술자리는 늘 웃음이 가득했다.

 

그녀는 매번 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다가왔지만, 속을   없는 그녀에게  다가가지질 않았다.




그렇게 반년의 시간을 보낸 어느 날, 녹화시간 30분 전인데 Y가 오지 않았다. 한 번도 시간을 어기거나 약속에 늦은 적이 없던 그녀가 웬일일까? 걱정이 됐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특유의 통통 튀는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곧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녹화를 10분 앞두고 나타난 그녀는 금방 쓰러질 것처럼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있었다. 이대로 녹화를 해도 될까?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밝고 상냥해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어려워보였다.


“괜찮겠어요?”

“으응.”


그대로 녹화가 시작되고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친구들, 안녕!”


스카이콩콩을 탄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그녀를 봤다. 입 끝에 미소를 가득 품고 손짓까지 해가며 연기를 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놀라웠다. 그녀의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녹화 내내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봤다. 녹화가 끝나자 그녀가 나를 불렀다.


“오늘 나랑 술한잔 할까?”

“네...”


홀린 듯 대답을 했고, 홀린 듯 그녀의 단골집에 갔다. 그녀는 시사모와 소주를 주문했다.


“시사모가 뭐예요?”

“나도 몰라. 근데 맛있어.”

“아...”


그녀다운 대답이었다. 쿨하고 의심 없는!


주문한 시사모가 나왔다. 양미리처럼 뱃속에 알이 가득 찬 노가리 크기의 생선구이였다. 먹태 찍어 먹는 소스와 비슷하면서 다른, 간장에 마요네즈를 푼 소스가 같이 나왔다. 그녀가 시사모는 머리부터 먹어야 한다며 소스에 머리를 푹 담갔다 꺼내 내 입에 넣어줬다. 반신반의하며 받아 먹었다. '오호~!' 고소하고 담백하고 쫄깃하며 알이 톡톡 터지는 게 재미와 감동이 동시에 있는 맛이었다. 재미와 감동은 글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맛이랄까?


“진짜 맛있다.”

“맛있지...”


말끝이 흐려지더니 Y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언니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나... 아프다.”

“네? 재발했어요?”

“아니. 마음이 아파.”

“...”


한 번도 자기 얘길 한 적 없는 그녀가, 항상 밝게 웃던 그녀가, 마음이 아프다는 게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혼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 아들한테 아빠가 없는 게 싫어. 근데 난 너무 힘들다. 흑흑.”

“갑자기 왜요?”


갑자기가 아니라고 했다. Y의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돈이 필요하면 연락한다고 했다. 결혼 후 생활비를 대 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10년이 넘게 그녀 혼자 부모님과 아들을 부양해 왔다고 했다. 결국 암에 걸려 수술을 하는데도 남편은 만원만 빌려달라며 전화를 했다고 했다. 오늘은 청약저축한 돈을 몽땅 빼갔다고 했다. 세상에... 찌질하고 성격파탄인 남편들 얘기는 들어봤어도 이렇게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남편은 처음이다. 이혼 당해 마땅한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로지 아들 때문에 참고 살았던 것이다.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렇게 힘든 상처를 안고, 그렇게 밝은 얼굴로 살아왔다니...


“2차 가자!”

“좋아요!”


캔맥주를 사들고 청계천으로 갔다.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물을 보더니 그녀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울음보를 터뜨리기 전에 뭐든 해야 했다.


“사람 많은 데서 소리 질러본 적 있어요?”

“아니!”

“한 번 해볼래요? 내가 망 봐줄게, 경찰 오는지!”

“진짜? 뭐라고 지르지?”

“나쁜 놈! 미친 놈!”

“좋아!”


Y가 천변으로 내려갔다.


“나쁜... 놈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더 크게!”

“나쁜 놈... 미친놈아...”

“더더더 크게!!”

“야 이 나쁜놈아! 미친놈아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소리 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계속 ‘더 크게!’를 외쳤고, 그녀도 계속해서 소리쳤다.


비록 상처를 끌어안고 불행하게 살았지만 그녀가 멋있었다. 희생할  아는 그녀가, 나약한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할  프로인 그녀가!




겉으로는 강해 보였어도 그녀의 나약함은 약점이 되어 남편과의 이혼을 매번 방해했다. 여러 번 이혼을 시도했지만 막상 남편을 만나기 전날이면 Y는 몸살을 앓았다.


그런 그녀에게 누누히 말했지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가슴에 비만 품고 살지 말라고. 구름을 조금만 걷어내도 다른 세상이 보인다고.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나 '예스' 만 하지 말고, '노!' 라고 말하라고.
희생에 익숙해지지 말고 싫으면 거절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우리는 자주 이 주제를 소주 삼아 시사모를 씹었다. 그녀가 이혼하기까지 5년이 걸렸으니 그 사이에 우리가 먹어치운 시사모가 몇 마리나 될지… 이혼 축하파티에서도 우리는 어김없이 시사모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청계천으로 가서 외쳤다. 이번엔 둘이 함께!


“야아 호오오!!”




사진 / 네이버 이미지 : 디스이즈잇


이전 03화 멍게 밖에 난 몰라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맛에도 심리가 있다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