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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15. 2021

베일에 싸인 '척'

작가인가 잡가인가

첫 직장이 방송국이었고,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방송가에 대한 기대가 컸고, 작가가 된 내가 자랑스러웠어야 하는데...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방송작가는 작가라 쓰고 잡가라 읽는 직업이었다. 프리랜서라 쓰고 밤샘이라 읽는 일이었다. 낮보다는 밤이 익숙한 인간이 되어갔다. 회의감이 깊어지는 만큼 하루빨리 달아나고 싶은 날이 많아졌다. 그때 '척'이 없었다면 더 일찍 그 세계와 이별했을 것이다.

 

작가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그걸 먹을 때면 난 자연스럽게 겨울밤 눈 날리는 여의도의 골목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과 동시에 TV 방송구성작가로 일했다. 내가 꿈꿔오던 고상한 작가세계는 아니었지만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하지만 방송작가는 일하면 할수록 '작가'라기보다는 '잡가'에 가까웠다.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라 아이템 찾고 섭외하고 촬영 장소 세팅하고 촬영 테이프 리뷰하고 자막 쓰고... 글을 쓰는 건 촬영 전 구성안을 짜고 촬영 후 편집본에 내레이션을 입히기 위한 원고를 쓰는 게 전부였다. 어디 가서 누구한테 작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원고를 쓰는 게 방송작가 업무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규직도 아닌 직업이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에, 외주제작사를 잘못 만났다간 쥐꼬리 만한 페이마저 떼이기 일쑤이고, 작가보다는 피디 위주의 시스템인 그 세계에서 큰 소리 한번 못 치면서 밥 먹는 횟수보다 밤샘하는 날수가 더 많은 데다가, 그렇게 온몸을 바쳐 일해도 시청률이 안 나오면 프로그램 조기종영의 쓴맛을 봐야 했다. 프로그램 종영은 곧 해고다.


  앞도 예측할  없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고, 종국에는  일이 내게 맞지 않는 일인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여유를 가지고 아이템을 구상하고 나만의 세계관으로 글을 쓰는 일이 아니었다, 방송작가는!


방송가는 매일매일 아니 매 순간순간이 살얼음판이었다. 특히 작가인 나에게 그 부담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일모레가 방송인데 아이템이 정해지지 않았다던가, 아이템은 정해졌지만 섭외가 안 된다던가, 섭외가 돼서 촬영을 나갔는데 촬영하기 힘든 돌발 상황이 생긴다던가, 촬영은 했는데 이야기 구성이 난감하다던가, 편집이 늦어져 10분 만에 더빙 원고를 써서 넘겨야 한다던가, 생방송 중에 출연자와의 통화가 안 된다던가... 등등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작가 탓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방송이라는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쉴 때도 쉬는 게 아니고 먹어도 기운이 안 날 때가 많았다. 일과 멀어져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은 집에 가는 시간이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 사는 장승배기를 간신히 섭외한 그날, 피디한테 갖은 욕을 먹고 이젠 정말 끝이구나 생각했다. 피디가 욕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촬영 장소가 산골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산속에 갇히면 어떡하냐고 윽박질렀다.


"아이템이 좋으면 뭐하냐, 촬영진 생각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나이에 카메라 들고 등산해야겠냐, 거기 가면 먹을 거라곤 감자밖에 없을 텐데 쓰러지는 꼴을 보고 싶냐..."


대충 이런 얘기였다. 작가인 나는 아이템만 좋으면 그만인데, 피디인 그놈은 아이템이 좋으면 뭐하냐…로 말을 시작하니 정말 할말하않. '이번 아이템만 하고 끝내자!' 다짐을 하고 동료 작가와 함께 퇴근했다.


낮 동안 어두운 사무실에 매여 있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유독 밤거리가 밝았다. 하늘하늘 눈발이 날리는 여의도의 밤은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차와 사람으로 즐비했던 골목은 밤이 되면 홍등을 밝혔다. 거대한 홍등, 포장마차! 홍등에 뿌려지는 하얀 눈이 그림처럼 예뻤다. 그 환상적인 풍경에 이끌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홍등으로 발길을 옮겼다.


붉은 빛과 하얀 눈과 포근한 연기가 만나는 지점에 작은 홍등 하나가 있어 그곳으로 갔다. 그날 이후 수많은 밤을 책임져 준 그 단골 홍등을 우리는 '척' 홍등이라고 불렀다. 처음 '척' 홍등 안으로 들어간 날, 주인 이모는 턱으로만 짧게 인사하고는 홍합이 수북한 양재기와 소주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척' 올려놨다. 이어서 은박호일 뭉치를 난로 위에 '척' 올려놨다.


"이모! 그게 뭐예요?"

"..."


이모는 한결 같이 묵묵부답이었다.


"저희가 예뻐서 주는 특별 안주예요?"


동료 작가가 넉살 섞인 말을 건네도 여전히 묵묵부답. '척' 올려진 호일뭉치는 '칙' 소리를 내며 20분가량 우리의 애를 태웠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시니 딱 20분이 지났다. 한창 정신없이 일하던 아주머니는 정확히 20분이 지나자 귀신같이 난로 앞으로 갔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신기한 건 도구도 쓰지 않고 맨손으로 그걸 '척' 집어 든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생활의 달인'으로 인정받은 아주머니는 역시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호일뭉치를 '척' 올려놨다.


호일뭉치 속엔 과연 뭐가 있을까? 솔솔 코를 찌르는 구운 내로 보아 생선인 것 같긴 한데 포장마차 출입 경력이 없는 우리로선 도저히 가늠이 안됐다. 세상의 모든 생선 이름을 다 떠올리며 호일뭉치를 열었다. 그 안엔 까만 옷을 입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꽁치'가 누워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 고소한 살맛이 느껴지는 잘 익은 꽁치를 만난 우리는 탄성이 절로 났다.


"우와~ 끝내준다!"

"맛있겠다!"

"소주 맛 좀 나겠는데?"


우리는 꽁치를 통째로라도 씹어 먹을 기세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젓가락보다 먼저 꽁치 머리에 도착한 것은 이모의 두툼한 손이었다. 두툼한 왼손으로는 두툼한 꽁치 몸통을, 두툼한 오른손으로는 뾰족한 꽁치 머리를 잡더니 마술처럼 반 토막을 냈다. 머리와 가시가 발라진 채 널브러진 꽁치는 더욱 먹음직스러웠다.


"이모 짱!!"

"잘 먹겠습니다!"


이모의 묵묵한 마음이 담긴 꽁치는 순식간에 우리들의 뱃속을 채웠다. 그러고 보니 베일에 싸인 은밀한 생선은 주인과 닮았다. 신비감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검은 옷을 입은 두툼한 외모는 푸근한 시골밥상의 냄새가 나고!




산골 아이템은 무사히 방송됐다. 아니, 무사한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템이 국장 마음에 쏙 들었는지 폭풍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피디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고 했다. 난 다음 아이템을 찾느라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꽁치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전수해 준 이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나를 계속 출근하게 만들었다. '척' 홍등을 가기 위해서라도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던 작가를 계속해야 했고, 계속하다 보니 물렁해진 작가정신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잡가임엔 변함이 없었지만 잡가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템 찾는 게 힘들고, 살얼음을 걷는 게 살 떨리고, 피디가 꼴 보기 싫어도,
그 후에 얻게 되는 보람이 더 컸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게 뿌듯했다.


이 모든 걸 알게 해 준 고마운 '척', 꽁치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사진 / 구글 이미지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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