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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19. 2021

요구르트라 쓰고 피아노라 읽는다

‘요일’의 탄생비화

서른 두 살에 두 번째 피아노를 갖게 됐다. 열 한 살에 첫 피아노를 가졌으니 20년 만이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처음으로 누려본 사치였다. 금전적으로는 사치였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나마 힐링이 필요했기에 무리해서 장만했다.


디지털 피아노이긴 했어도 최대한 건반이 아날로그 피아노와 흡사한 걸로 골랐고, 꽤 만족스러웠다. 키보드를 올려놓을 받침도 의자도 없이 본체만 50만원에 구입했다. 동네 재활용품점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앉은 높이에 맞는 선반을 사고 책상 의자를 끌어다가 피아노를 쳤다. 당시 유키구라모토 음악을 좋아해서 악보집을 사다가 'Lake Louise'를 쳤다. 아직 녹슬지 않은 실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매일매일 피아노를 쳤다.


그렇게 정든 피아노를 1년 만에 팔았다. 단돈 25만원에. 2008년 리만브라더스의 ELW(워런트) 교육동영상을 제작하던 중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6개월 간의 제작비가 날아가버렸다. 제작사에서는 나중에 나중에 하더니 끝내 페이를 주지 않았다. 결국 돈이 없어 피아노를 팔았다. 피아노를 판 돈으로 편의점에 가서 요구르트를 한 줄 샀다. 그 날의 첫 끼니였다. 빨대를 꼽아 한 개를 마시는데, 처량한 그 상황에서 어릴 적 요구르트의 첫 경험이 떠올랐다.     




처음 요구르트를 맛본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요구르트의 맛을 느낀 게 언제인지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요구르트 맛을 각인시켜준 ‘요구르트의 '(자칭 ‘요일’) 있었기 때문이다.


막내인 내가 태어나면서 여섯 가족의 생활이 좀 살만해졌다고 엄마는 누누히 말하셨다. 내가 복덩이라고! 덕분에 언니 오빠가 못 누린 걸 여러 가지 누리며 컸다. 나만 유치원에 다녔고,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집안 전체로 본다면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도 겨우 아빠 월급날 통닭 두 마리로 사치를 부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열한 살 여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생애 최초의 피아노 콩쿨을 앞둔 어느 날, 가족들을 다 불러 모은 아빠가 중대 발표를 하셨다.


"이번에 봄이가 대회 나가서 상 받으면 아빠가 피아노 사줄게!"

"진짜요?"

"그럼! 그러니까 꼭 상 받아야 돼!"

"네에!!!"


학원에 가야만 칠 수 있었던 그 멋진 피아노를 집에서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빠가 왜 그렇게 엄청난 제안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의 편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나로선 더욱 기세등등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날부터 맹연습에 돌입했다. 오로지 피아노를 갖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5년간 피아노를 쳤지만 그만큼 열정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피아노 콩쿨 전날, 엄마는 콩쿨에 입고 갈 초록색 투피스를 사오셨다. 꽃무늬가 박힌 초록빛깔의 옷은 부푼 내 마음을 대변하듯 산뜻하고 예뻤다.


피아노 콩쿨 당일! 아빠의 중대 제안만을 떠올리며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가온 도'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가온 도를 알아야 시작을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일단 가온 도라고 짐작되는 곳에 첫 음을 짚어봤다. 연습하면서 수십 번 들었던 그 소리가 아니었다. 한 옥타브 위로 다시 짚어봤다. 그 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대회용 피아노에 가온 도를 표시하는 열쇠구멍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빠의 중대 제안에만 신경을 써서인지, 가온 도만 찾다가 1분이 지나버렸다. 공황상태에 빠진 난 그렇게 엄청난 실수를 한 채 힘없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악보 한 마디도 치지 못한 내게 심사위원들은 다시 앉아서 치라고 말해줬다.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 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피아노를 쳤고,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그렇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피아노 콩쿨이 끝났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꾹꾹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참으려고 해도 계속해서 울컥울컥 넘어왔다. 그렇게 맹연습을 했는데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피아노고 뭐고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멍하게 시상식을 기다렸다. 시상식을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참가상 같은  없나? 그것도 상은 상이잖아. 아냐 아냐. 겨우 참가상 받아서 뭐하게? 에휴. 피아노는 이대로  건너 가는 건가?'


생각이 계속 오락가락했다.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시상식장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도저히 용기가 안 나서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만 갔다 오시면 안돼요? 전 그냥 여기 있을래요."

"왜에? 그 실수는 아무 것도 아냐. 얼마나 잘 쳤는데!"

"가기 싫어요. 안 갈래요."

"..."


선생님은 더 이상 날 설득하려 하지 않고 시상식장으로 가셨다. 얼마 후 선생님은 트로피를 하나 가져오셨다. 트로피엔 '제 0회 전국 피아노 콩쿨 대회 초등부 은상 봄' 이라고 쓰여 있었다.




며칠 후 꽃무늬 초록 투피스를 다시 입고 아빠와 함께 천안 시내로 나갔다. 5분 쯤 아무 말 없이 걷던 아빠는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간판엔 '미스 김 다방'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한참 내려가니 대낮인데도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공간이 나왔다. 퀴퀴한 냄새와 서늘한 기운 때문에 기분이 별로였다.


"아빠! 여기 왜 왔어? 여기가 어디야?"

"커피 마시는 데야. 아, 저깄다. 저쪽으로 가자."


아빠가 내 손을 잡고 데려간 자리엔 진한 화장에 무슨 향인지도 모를 강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한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화장을 별로 하지 않는 수수한 엄마와는 너무 다른 여우같은 아줌마였다.


"안녕하세요! 얘가 봄이에요. 봄아, 인사해."

"누군데?"

"얼른 인사 먼저해."

"안녕...하세요."

"응. 니가 봄이구나. 반갑다. 앉아."


아빠와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보다 훨씬 화장을 진하게 한 또 다른 아줌마가 주문을 하라며 우리 자리로 왔다. 그녀가 주문을 했다.


"커피 두 잔하고... 봄이는 아직 어리니까 요구르트 마실래?"

"네."


주문을 마치고 그녀가 말했다.


"봄이가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친다며? 콩쿨에서 은상까지 받고!"

"네..."

"자기는 잘 못 쳤다고 하는데, 그렇게 실수를 했는데도 은상 받은 거 보면 내 딸이지만 진짜 잘 치나 봐요. 기특해요. 허허허."

"그러게요. 실력은 대상 감이었던 거죠. 호호호."


아빠와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계속 내 얘기만 했다. 주문한 커피와 요구르트가 나왔다. 예쁜 컵에 요구르트가 가득 나올 거라고 기대했던 내 예상과 달리 슈퍼에서 파는 요구르트에 빨대 하나가 꽂혀 나왔다. 실망이었다.


"그게 수출용이라구요?"

"네. 그래서 사이즈도 보통 피아노보다 작아요.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구요. 훨씬 좋으면서 가격도 저렴하고, 작으니까 거실에 놓기에도 좋으실 거예요."

"아..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봄이가 운이 좋은 거죠. 마침 그런 게 하나 남아 있어서 얼른 드리는 거예요."


내 피아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가 피아노를 파는 아줌마이고, 특별히 좋은 피아노를 추천해 준 아줌마인 것이다. 빨대로 요구르트를 쪽 빨아마셨다. 예전에 마셔본 요구르트의 맛과 달랐다. 기분 좋을 만큼 달고 목 넘김도 훨씬 부드럽고 배부르지 않을 만큼 적당했다.


"봄이는 좋겠다. 아빠가 피아노도 사주시고. 그치?"

"네. 너무 좋아요. 아줌마도 좋아요. 요구르트도 맛있어요."

"호호호. 그래? 하나 더 시켜줄까?"

"네에!"


생애 첫 피아노를 갖게 된 그 날, 그 자리에서, 요구르트를 5개나 마셨다. 며칠 후 우리집 거실엔 영창피아노 한 대가 놓였고, 아빠의 바람대로 아침마다 피아노 연주를 했다. 피아노가 있는 삶은 우리 가족이 처음 갖는 문화생활이었다.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언니들에게는 신기한 장난감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피아노 콩쿨의 대상 이하 상들은 모두 참가상이었다고 한다. 김 빠지는 진실이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걸 얻었다. 상 받아오면 피아노를 사주겠다는 아빠의 제안 덕에 11년 인생 처음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게 어떤 건지를 알게 됐다. 당시에는 과정이 곧 결과로 이어졌지만 과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삶에서 가장 위로가 필요한 순간마다 가장 행복했던 때의 맛이 떠오른다.
맛은 위로가 되고 위로는 힘이 된다.  
요구르트를 마시니 피아노가 생겼던 어릴 때와는 달리 비록 피아노를 팔아 요구르트를 마시고 있지만, 6개월을 준비한 일이 한순간 없던 일이 됐지만, 뭐 어떤가.
1년 간 피아노를 치며 피로를 잊었고, 6개월 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그럼 된 거다.
이제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요일’을 떠올리면 된다. 하하하!




사진 / 구글 이미지 : sho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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