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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3. 2021

참을 수 없는 옻의 유혹

옻 타는 게 뭔지 보여줄게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떠났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온 후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걷고 운동하길 누구보다 싫어했던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을 가고, 집 안에 틀어박혀 책이나 보는 걸 좋아했던 내가 새로운 곳을 찾아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미뤘던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했고, 선입견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것들에 모험심을 발휘했다. 그중 하나가 옻을 먹는 일이었다. 금기 음식이었기에 더더욱.




옻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10대 때였다. 옻나무에 스치기만 했는데 옻독에 올라 죽었다는 옆 동네 할아버지. 옻인지 모르고 먹었다가 온 몸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고 흉측하게 변해 일주일 간 병원 신세를 졌다는 친구 엄마. 전화기 너머로 옻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에 옻이 오른다는 옆집 아저씨의 말까지 듣고 나자 옻은 전염병처럼 끔찍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옻에 대해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았던 건 옻을 타는 엄마 때문이었다. 옻을 전혀 타지 않는 아빠가 동네 어르신들과 옻닭을 먹고 오신 날, 화장실에 다녀온 엄마는 까무러치게 놀라셨다. 그때는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아빠가 일을 보신 후 그 위에 같은 일을 보신 엄마의 엉덩이와 등에 옻 알레르기가 번진 것이다. 그 후로 아빠에게 옻 섭취 금지령이 내려졌다.


먹지도 보지도 못한 옻이지만 그것의 첫인상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모두 험악했으니 당연히 옻 거부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서 아무리 옻을 먹으니 기운이 나더라, 냉한 사람이 옻을 먹으면 온해진다더라, 여름에 옻닭 만한 보양식이 없다더라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 절대 먹어선 안 되는 음식으로 낙인찍었다.


그런 내가 옻을 사랑하게 됐다. 옻에 중독된 것이다.




2012년 4월 봄. 성당에 모임이 있어 갔다가 근처에 사는 친구 아버지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았다. 점심에는 특별한 메뉴가 있을 거라는 언질이 있었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 거실에는 이미 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상 위에 있는 거라곤 생나물 한 소쿠리와 간장 뿐이었다.


'특별한 게 저건 아니겠지? 설마... 혹시 코스로 나오는 건가?'


실망 반 기대 반으로 자리에 앉았다.


"올해 첫 옻 맛 좀 볼까?"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옻이라고? 스치기만 해도 독이 오른다는  ? 말만 들어도 독이 오른다는  ?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


솔직히 처음 보는 옻이었지만 겁이 났다. 어른들과의 겸상에서 끝까지 안 먹는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넙죽 먹을 수도 없고. 오찬 자리에는 성당 신부님과 모임에 함께 있던 50대 아저씨와 친구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 있었는데 신부님과 아버지는 이미 옻 맛을 아시는 분들이었고 아저씨와 난 첫 경험이 될지도 모를 날이 된 것이다.


"봄아. 먹어봐. 너희 아버지 옻 안 타시잖아."

"엄마는 심하게 타시는데..."


아무 말씀 안 하시던 신부님이 옻 순에 간장을 푹 찍더니 '오독오독' 씹어 드셨다. 어릴 적 개암 먹던 소리와 비슷했다.


"대추를 보고도 안 먹으면 늙고, 옻을 보고도 안 먹으면 어떻게 될까?"


신부님이 나를 보고 물어보셨다.


옻을 보고도  먹으면 옻을  타겠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옻을 보고도 안 먹으면... 나야 좋지. 내가 다 먹을 수 있으니까. 하하하."

"하하하. 역시!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버지가 한 수 거드셨다. 두 분이 옻 순을 우적우적 씹어 드셨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도 안 드시고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왜 안 드세요?"

"난 어릴 때 옻 타서 죽을 뻔했거든. 또 한 번 그 끔찍한 걸 겪고 싶지 않아서. 신부님! 제 몫까지 많이 드세요!"

"네에! 감사하죠."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먹어 볼까? 말까? 맛있게 드시는 두 분을 보면 군침이 돌고, 혹시나 옻 타서 고생을 하게 될 걸 생각하면 망설여지고.


"죽기밖에 더 하겠어?"


쐐기를 박는 신부님의 한 마디에 도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한 번 먹어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이걸로 먹어봐. 이게 진짜배기야."


아버지는 그중에서 가장 큰 옻 순을 집어 주셨다. 어차피 먹기로 한 거니까 크기는 따지지 말자. 진짜배기라잖아. 간장에 푹 찍은 후, 호흡을 가다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독. 오독. 오독 오도도독."

들기름 향이 먼저 코를 간지럽히고 간장 맛이 혀를 적시는 건 아주 순간일 뿐이다. 옻 순을 씹는 그 식감이 이 모든 걸 압도한다. 싱싱한 활어의 나물 버전이 있다면 바로 옻 순일 거다. 살아 숨 쉬는 맛! 씹는 소리와 코 끝에 닿는 싱그러운 향과 입 안을 감도는 부드럽고 알싸한 맛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먹으면서도 또 먹고 싶어 안달이 나는 맛이었다.


아버지가 집어 준 옻 순을 다 먹고 또 하나 집어서 간장에 찍어 순식간에 씹어 삼켰다. 내 몸에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빨리 한 개 더 먹고 싶은 마음뿐.


"어때? 죽이지?"

"하나 더 먹어봐야 알 것 같아요."

"하하하."


계속해서 입 안에 옻 순을 넣는 날 보고 신부님도 아버지도 아저씨도 웃으셨다. 그렇게 옻 순을 좋아하는 신부님과 아버지는 쉴 새 없이 먹어대는 나를 위해 속도를 늦추셨다.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그 자리가 너무나 고마웠다.


"옻 순은 언제까지 먹을 수 있어요?"

"왜 또 먹게? 이제 봄이 줄 거 없는데."

"안 주시면 밤에 서리해 갈 거예요!"

"하하하. 5월까지는 먹을 수 있어. 그때까지 많이 먹어둬."

"앞으로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될 거다."

"신부님! 기다리시느라 힘드셨으니 많이 드세요!"

"네. 매번 고맙습니다."




다행히 옻 알레르기는 없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은 건 아니다. 아무리 알레르기 체질이 아니라고 해도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으면 몸이 가렵다. 그 해 봄 옻 순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약국에 두 번이나 갔다. 그래도 주위에 옻 순을 먹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약을 미리 준비해 놓고라도 꼭 한번 먹어보길 권한다. 옻 순 맛을 들이면 다른 나물들이 얼마나 하찮은 맛과 식감을 내는지 알게 된다. 정말이다!


지금은 옻 마니아가 된 내게 ‘옻을 탄다’는 말은 ‘옻을 먹고 싶다’로 번역된다.
옻 얘기만 들으면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른다.


연중 행사로 매년 5월이면 충북 옥천에 간다. 옻 축제가 열리는 그곳으로. 조금 늦은 감은 있다. 옻은 새순이 나오는 4월에 먹어야 '찐'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옻나무를 심지 않는 한 그 맛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옻 순을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차를 몰고 1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처음 옥천에 갈 때는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며 2시간 반을 가고, 옻 순 두 박스를 들고 다시 2시간 반을 왔다. 번거롭고 먼 여정이지만 오고 가는 길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 해 첫 옻 순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진 / 구글 이미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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