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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1

벼랑 끝에서 닭을 뜯다

체험, 배고픔의 현장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려 2년을 백수로 산 적이 있다.

 

마지막 연인과 헤어진 후였고, 30대 후반이었다. 엄청난 모험이었고, 가족들이 보기엔 무모한 '짓'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때는 최후의 보루라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할 일이라고 내 행동을 합리화했다.


얼마간은 버틸만했다. 얼마 안 되지만 퇴직금도 있었고, 도서관과 집만 오갔기 때문에 돈 쓸 일이 거의 없었다. 1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문학전집을 몇 번씩 읽고 쓰고 해도 알 수 있는 게 없었고, 돈은 바닥이 났다. 벼랑 끝에 몰리자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먹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던 내가 큰돈을 손에 쥐게 되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뭐라도 사 먹자!'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풍겨져 왔다. 치킨 냄새였다. 나도 모르게 그 냄새를 따라가는데 저 멀리서 비를 맞으며 뛰어오는 소녀가 보였다. 열 한 살의 내가!




요즘은 골목마다 있는 흔하디 흔한 게 치킨집이지만 1980년대 우리 동네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파는 통닭이 유일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기름통에서 갓 튀겨져 나온 때깔 좋은 통닭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냄새만 맡아도 기분 좋아지는 통닭 때문에 일부러 가게 근처를 어슬렁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행복한 통닭을 먹을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단 한 번! 아빠가 월급을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통닭 먹는 날은 꼭 비가 왔다. 그것도 매번 얌전히 우산을 쓰고 걸을 수 있을 만큼이 아니라 억수로 쏟아지는 장대비였다. 통닭 먹을 때는 으레 비가 와줘야 제 맛이긴 하지만 그 살코기를 맛보기까지의 통과의례가 만만치 않았다. 통닭을 먹기 위한 관문은 꽤 험해서,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일은 반드시 두 살 위인 작은 언니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가장 무시무시했던 열 한 살 여름. 아빠의 월급 전날 작은 언니와 중대한 결심을 했다.


"이번엔 안 돼!"

"그러다 죽으면 어트케?"

"음.... 정말 죽을 거 같으면 그때!"

".... 알았어."


생과 사를 결정하는 그 결심은... 절대 우산을 집어던지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아빠의 월급날. 어김없이 비가 왔다. 이번 비 역시 심상치 않았다. 태풍의 영향권 아래 있는 비여서 거의 폭풍우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통닭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작은 언니와 난 아빠의 퇴근시간인 6시가 되기 전에 통닭을 사다 놓기 위해 5시부터 우산을 들고나갔다. 다행히 낮에 불던 세찬 바람은 좀 잦아든 것 같았다. 우리는 신이 나서 통닭집까지 뛰어가기로 했다. 지는 사람이 통닭을 들고 오기로 내기를 했다.


"요이 땅!"


작은 언니의 출발 신호에 맞춰 있는 힘껏 뛰었다. 갑자기 억수 같은 빗물이 얼굴에 달려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지만 굴하지 않고 달렸다. 언니가 얼마큼 뛰어왔는지 궁금해서 뒤돌아봤는데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내 뒤에서 뛰어오고 있었는데 어딜 간 거지?


"봄아! 여기야 여기!"


언니의 목소리가 통닭집 앞에서 들려왔다. 언니가 이긴 것이다! 하긴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달리기를 해서 언니를 이긴 적이 없긴 했다. 그래도 '이번만은...' 하는 희망을 품고 내기를 한 것인데 '역시나'였다. 게임에서 이겼든 졌든 그것보다 우선하는 건 역시 통닭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였다. 기분이 나빴다가도 그 냄새만 맡으면 헤헤 웃음이 났다. 먹을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기다림의 순간이다. 벌써 3년째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지만 점점 행복의 강도는 세졌다.


‘오늘 통닭은 얼마큼 고소할까? 닭다리가 지난달보다 클까? 껍데기는 여전히 바삭바삭하겠지? 오늘은 기필코 날개 한쪽을 차지하고 말리라!’


‘번쩍!’ 즐거운 상상을 단숨에 앗아갈 무서운 번개가 내리 꽂혔다. 번개 다음은 분명 천둥인데 그 무시무시한 소리는 늘 겁이 났다.


"우르르르... 우르르 쾅쾅!!"

“언니, 무서워. 우리 집에 어트게 가?”

“우산이나 버리지 마!”


말은 그렇게 해도 쏟아지는 비를 보는 작은 언니의 눈빛은 가늘게 떨렸다.


“통닭 나왔다!”


아줌마의 알람 소리였다. 어느새 30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생닭이 통닭이 되어 우리와 마주했다. 통닭과의 대면은 언제나 즐거웠다. 하지만 그 빗속에 고놈을 무사히 모셔갈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찔했다.


“언니가 들을까?”

“아니! 내가 졌잖아.”

“조심해. 넘어지지 말고.”


방금 나온 통닭을, 온기가 있는 그걸 내가 꼭 들고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언니가 들으나 내가 들으나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었다. 통닭을 모신 봉다리의 손잡이 부분을 팔목에 걸고 몸을 한껏 움츠렸다. 우산을 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빗물로 커튼을 친 것 같이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대로 10분만 걸어가면 되니 걱정 없었다. 그런데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난관이 있었다. '번쩍' 그리고,


“우르르르 쾅쾅!!”


천둥 다음엔 또 번개다, 번개. 당시 우산은 끝이 쇳덩이로 뾰족 솟아있어 피뢰침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일부러라도 그렇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문제는 번개다. 번개를 피해야 하는데 피하려면 우산을 옆으로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언니와 우산을 버리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꼭 지키고 싶었다. 하늘이 번쩍 밝아졌다.


"드드드드드 쪄어억! “


만일 아파트보다 큰 거인이 있어 아파트를 통째로 들어 올려 ‘두두둑’ 반으로 부러뜨릴 수만 있다면 그 소리가 딱 저 소리일 것 같았다. 하늘이 쩍 갈라지는 소리, 반으로 뚝 부러지는 소리!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하늘이 번쩍 했다. 아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번쩍거렸다.


“아아아 아아악! 언니, 어트게???”

“버려어!”


언니는 이미 우산을 버린 상태였다. 나도 우산을 집어던졌다. 그대로 들고 있다간 번개에 맞아 시커멓게 타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끔찍하게 죽고 싶진 않았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뛰었다. 미친 듯이 뛰어가니 대문이 코 앞에 보였다. 더욱더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드드드드드 쪄어억! 쪄어억!”


대문 앞에 다다랐는데도 여전히 하늘은 갈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이다. 집 앞에 왔으니 이제 두려울 게 없었다. 잔뜩 끌어안고 온 통닭 봉지를 살짝 열어봤다. 김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통닭은 멀쩡했다. 하지만 언니의 몰골을 보니 가관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물이 뚝뚝 흐르고, 볼은 시뻘겋게 달아 오른 데다가, 다라에서 방금 건져낸 우리 집 강아지 ‘진순이’처럼 옷이 몸에 달라붙은 채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하하. 너 되게 웃겨.”

“언니가 더 웃기거든? 하하학.

“크크크크. 너 내가 우산 버리지 말랬잖아.”

“언니가 먼저 버렸거든? 크크크큭.”

“캬캬캬캬캬. 니가 울 거 같으니까 그랬지.”

“언니도 그랬거든? 캬캬캬캬캭!”


물에 빠진 강아지 꼴을 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여섯 식구가 닭 두 마리를 나눠 먹는 시간. 그날도 역시 닭다리는 아빠와 오빠, 닭 날개는 엄마와 작은 언니, 닭 목은 큰언니의 몫으로 돌아가 난 가슴살을 먹었다. 아끼고 또 아껴 먹었다. 한 조각을 100개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쪼개 먹었다. 그 맛이 얼마나 꿀이었는지... 그날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한 달에 한 번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동네에 통닭을 파는 집이 있다니 신기했다. 그보다 얼른 통닭이 먹고 싶어 군침이 돌았다. 한 마리를 사서 집에 가져왔다. 어릴 땐 먹어보지 못했던 닭다리를 먼저 뜯어 삼켰다. '닭다리가 이런 맛이었나?' 탱글탱글한 식감이 온전히 느껴졌다. 닭날개를 호로록 삼켰다. 뼈 사이사이에 붙은 살들까지 알뜰히 먹었다. 두 다리와 날개를 뜯고 나니 몸통만 남았다. '가슴살이 이렇게 맛있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꿀맛에 울먹울먹 해졌다.


‘20 전에는 아빠가   흘려 일하신 돈으로 통닭을 먹었고, 지금은 부모님이 아끼고 아껴 모으신 돈으로 통닭을 먹고 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나?'


통닭을 사드려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다니... 죄책감마저 들었다. 어릴 적만큼 맛있는 통닭을 눈물 콧물까지 섞어 먹고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받은 돈 다 쓸 때까지만 글을 쓰자고 결심했다. 그 후 1년을 더 버텼지만 작가의 세계는 미지로 남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는지 배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배운 건 배고픔이었다. 몸과 마음이 배고파보니 그 고통이 생생하게 남는다. 생생함은 살아있음의 다른 말이 아닐까?
살아있음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사진 / 구글 이미지 : oldtongd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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