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공부의 역사

by 아나타


뛰어나진 않아도 공부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공부가 아니라 나에겐 인생공부, 마음공부가 필요했다.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소설은 물론 심리학, 철학, 명리학, 불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고 어떤 것은 공을 들여 공부했다. 좋은 말은 기록되고 유효한 문장들 아래로는 밑줄이 그였다.

그 글들은 차곡차곡 쌓여 내 삶이 이런 상태구나 혹은 내 마음이 이렇구나 같은 깨달음을 줬다. 때로는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내가 자가치료에 능하다고 했다.

힘들어하다가도 매번 스스로 방법을 찾아 괜찮아지곤 한다고. 그리고 뭔가 계속 배우고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도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업을 지속해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맞지 않은 결혼생활 속에서 넘어지는 빈도는 잦아지고 강도는 세졌다. 내가 지탱하는 책임들이 늘어나고 삼키는 말이 많아질수록 뒤켠에 쌓아두었던 유효한 글들은 너무 쉽게 빛을 잃었다. 그 문장들은 내가 온전히 기대기엔 너무나 연약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사는 걸까?

몇몇 괜찮은 날들과 대부분 안 괜찮은 날들 그리고 최악인 날들로 채워진 일상.

뭔가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 뭘 더 배워야 하나?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님은 자명했다. 내가 뭘 몰라서 힘든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체득'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때 불현듯 명상이 떠올랐다. 그래, 명상!

늘 그랬듯 관련 책들을 사서 읽고 온라인 강의를 찾아 듣고 무작정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회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지인의 다이닝바를 도와주게 되었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는 걸 알고 와서 와인이나 따달라는 가벼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맞고 꽤 즐거웠다. 그동안 소통할 일이 별로 없던 본업과는 달리 손님과 마주하며 얻는 즉각적인 자기 효용감이 있었다. 당시 아침마다 했던 자애명상과 시너지를 내며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졌다.

그러다 매장에서 친해진 손님에게 어떤 분을 소개받게 되었는데 내가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는 연결해 준 것이었다. 젊은 시절 출가했다 환속한 분이라 했다.

카페에서 만나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분이 나에게 물었다.

'ㅇㅇ씨는 뭐가 제일 힘들어요?'

'아, 저는 요새 괜찮아요. 근데 예전엔...'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콱 막고는 다음 단어를 뱉어내기 힘들었다. 결국엔 눈물이 차올라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분은 내가 말할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려주셨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한 걸음도 옮기기 못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음을. 나는 괜찮지 않았다.


화두를 주셨다. 누구한테 묻거나 찾아보지 말고 불타는 의심으로 그 화두를 들고 수행을 해보라고 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정작 뭘 물어야 할지 몰라 눈만 껌뻑거렸다.

조주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에 잣나무이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에 잣나무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라 답하는 이 화두를 들고 다음 날 아침부터 파고들었다. '이런 뜻인가요' 하고 몇 번 카톡을 보냈지만 가닿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한 계절이 지나 봄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화두를 들지 않았다. 뜰 앞에 잣나무가 나를 살릴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후 흐드러졌던 벚꽃이 지는 동안 우여곡절 끝에 화두를 깨치고는 그분이 왜 나에게 이 화두를 주셨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걸음마를 겨우 땐 나에게 화두란 여전히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나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했다.


오랜만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는데 질문 전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윤회에 관한 짧은 법문을 설해주셨다. 분명히 이전에도 본 것 같은데 한 말씀 한 말씀이 새롭게 들어와 몇번을 돌려 보았는지 모른다. 그때 영상 하단에 정토 불교대학 입학요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워보자.

나는 곧바로 불교대학에 입학신청서를 냈다.



*매주 수요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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