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0일 동안 절을 하며 해야 할 일은, 나를 들여다보고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작업은 내가 꽤 오랫동안 몰두해 온 일이라 낯설지 않았다.
왜? 인생이 녹록지 않아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인간관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오랫동안 심리학 대가들의 책을 더듬거리며 탐독했었다. 부모님과의 관계, 어릴 적 환경과 성장과정 등을 그들의 설명에 기대어 완벽하진 않아도 스스로를 분석하고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져 마냥 싫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절하는 횟수를 세며 나를 들여다보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108배 도우미'라는 앱을 찾았다.(한국만세!) 내가 설정한 초마다 목탁소리로 알려주니 페이스에 맞게 절을 할 수 있었고 매일의 시간과 횟수가 기록되었다.
수행 마지막엔 일지를 썼다. 마음과 생각들이 구체적인 글로 남겨지자 내 업식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안다고 여겼던 ‘나’는 큰 덩어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큰 덩어리를 정성을 들여 세세하게 들여다보니 거기서 뻗어간 무수한 가지가 보였고 또다시 그 가지에서 뻗어간 실낱같은 것들이 보였다.
1남 4녀의 넷째로 태어나 스스로 느끼는 미미한 존재감,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거기에 따라오는 집착과 괴로움. 내가 가진 큰 업식, '인정욕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업식이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큰 결정은 물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을지 같은 사소한 선택들과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까지도 관여하는 것을 보았다. 이 과정이 어찌나 교묘한지, 내 의지라 생각했지만 그저 업식에 반응해 자동으로 일어나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온몸의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는 업식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고 수시로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이 지독한 습관을.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는 동안 전날 내가 놓친 것들, 또 습관대로 해버린 것들을 톺아본다.
스님이 말씀하신 '나를 안다'는 건 이런 과정이었다.
놓친 것을 분명히 아는 것, 그리고 다음엔 덜 놓치게 되는 것.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다. 10번 놓친 것을 9번, 5번, 그렇게 줄여가는 것. 쳐들었던 고개를 푹 숙이고 절을 하는 내 발밑을 본다.
그게 내가 절을 하며 해야 할 일이었다.
2023년 5월 22일 월
어제의 어리석음을 참회했다.
업장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
목도하고 내가 변화하려면 1000일이 걸린다는 것이 정말 참말임을 깨닫는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나의 단단한 업장은 인정욕구,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신경을 쓰는 나… 이다.
그 모든 게 자동반응으로 저변에 깔려 있어 나 스스로 알지 못할 때도 있음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더 빨리 알아차려 행위가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하도록 많은 신경을 쓴다.
그게 몸에 배어 있다. 그럼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닌 셈이다.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다…. 다른 사람이 나를 호의적으로 바라볼 때 감사한 마음은 갖되 들뜨지 말자. 모든 것은 공하다. 그들의 시선도 공하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바라보자…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감정,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 하였다. 오늘 깊게 참회하며….
2023년 5월 25일 목
어제의 일, 상황으로 마음이 조금 어지러웠는데 또 옳다 그르다 상을 짓고 말았구나 깨닫는다.
사실 그대로 본다는 게 쉽지 않다.
또 다른 내 업식은 아마 너무 깊게 생각해서 많은 감정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것의 뿌리는 어쩌면 교만. 남들을 컨트롤하고 싶은 욕심.
남에게 인정받는 것,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머릿속에 잡념을 만든다.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2023년 5월 26일 금
이틀연속 일한 아침,
알람에 몸을 일으키는데 천근만근 안 쑤시는 데가 없다
잠결에 생각해 보니 주말에는 한 시간 늦게 일어나 수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알람을 다시 맞추고는 누웠다.
그런데, 저번주엔 했는데? 아 이번엔 이틀 일한 뒤지, 아, 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고 하셨는데?
10분 정도 지났을까. 몸을 일으켜 명상방으로 간다.
그리고 그저, 다만 수행한다.
‘다만’ 부지런히 정진한다는 게 이런 것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애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버리는 것. 이 과정에서 마음이 불편하거나 너무 애를 쓰는 게 아니라 평온한 마음으로 해버린다.
절을 할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이게 수행정진이구나 싶다. 그냥 ‘싹’ 일어나 ‘싹’ 해버리는 것.
오늘도 하나 깨닫는다.
명상은 호흡에 더 오래 머물기로 한다. 여전히 다른 생각들이 날아들지만 다시 호흡으로 돌아간다.
2023년 5월 31일 수
무릎이 아프지 않도록 자세를 바꾸니 그제야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아, 이 자세였구나 싶다.
조금 부자연스러워 이 자세도 어디가 불편하진 않은지 며칠은 해봐야 알 것이다.
그때 허벅지 안쪽이 당기는 느낌이 난다. 새 동작에는 새 아픔이 따른다.
어떤 일을 하기에 몸을 맞추는 일에도 시간이 꽤나 걸리는데 하물며 마음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할까.
마음은 물길이다.
조금씩 나있던 물길이 시간이 지나면 짙어지고 깊어져 나중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그 길대로 물이 흐른다. 그게 업식이고 습이다.
물길을 바로 잡는 일.
그게 수행이구나 싶다.
100일을 하면 내 물길이 보이고 그 물길을 바로 잡으려면 1000일은 더 걸린다.
부지런히 수행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수행하는 것에 좋고 싫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냥 하는 것이고 피곤하면 다하고 한숨 자면 된다.
그냥 한다.
그 말이 이렇게 구체적인 상태라는 걸, 절을 하며 알게 된다.
2023년 6월 1일 목
남들이 나를 어찌 보는지
어찌 보았으면 좋겠는지
그런 생각들을 버린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 그게 나의 큰 업식이다.
생활하다가도 계속 알아차리고 있다.
생활 전반에, 너무 많은 것에 깔려있음이 보인다.
*매주 수요일,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