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애쓰지 않는다

by 아나타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하는 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아니다.


우리 삶은 대게 4가지 경우를 마주한다.

하기 싫은데 안 해도 될 때, 하고 싶은데 해도 될 때.

이 경우엔 문제가 없다. 늘 우리를 번뇌에 빠뜨리는 상황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 하기 싫은데 해야 할 때' 일 것이다.

수행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하기 싫은 쪽 일 텐데 이걸 매일 '그냥' 해버림으로써 수행이 되는 것이다.

새벽에 울리는 알람에 망설임 없이 일어나는 것. 어떤 다짐도 결심도 없이 방석을 펼치고 앉는 것. 한 배 한 배 108번의 절을 하는 것.

매일 아침 내가 한 일은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매일 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하고 싶다, 하기 싫다'에 연연하는지 보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인생을 무겁게 만드는 지를 알게 된다.

하기 싫다, 하고 싶다는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애쓰는 바 없이 실행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었다.

그 반복 속에서 겪어내는 인연과보도 큰 공부였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가 아니라 인연과보를 말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이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이는 선악 개념이 아니라 작동 원리에 가깝다. 그러니까 전날 술을 많이 마시거나 늦게 잔 다음 날이면 절을 할 때 힘들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알게 된다. 숙취에 쩔쩔매면서 절을 하고, 졸다가 나동그라진 적도 있으니까. 내가 지은 원인의 결과인 셈이니 원망할 대상도 후회할 일도 없다는 것. 그렇게 핑계를 버리고 전날밤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살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짐없이 수행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그것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의미였다. 여행을 가는 날이면 시간을 계산해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집이 아닌 장소에서는 베개 2개를 붙이거나 이불을 접어 방석 대신 삼았다. 출장 중 호텔방에서도, 명절 연휴 친척집에서도 수행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같이 사는 사람도, 주변인들도 내 수행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일정을 조율하거나 염두에 두었다. 수행을 최우선 순위에 두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는 이유가 되지 않았다.


처음 108배를 경험하고 '이거다' 생각은 했지만 1000일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3일만 해보자, 방석까지 샀으니 10일만 더 해보지, 뭐든 습관이 되려면 3주는 해야 한다던데, 그래도 100일은 채워야지.

수행 전 나는 눈앞의 하루가 아니라 저 멀리 별을 보고 달렸기 때문에 가 닿지 못하는 매일매일이 괴로웠다. 그래서 시작할 때 아예 작정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내딛는 발만 보며 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일이라는 너무 멀어 잘 보이지도 않는 목표점을 노려보고 가는 게 아니라 오직 코앞에 한걸음, 그냥 오늘 할 일을 해내는 것. 그렇게 하다 보니 100일이 200일이 되고 1년, 2년을 넘어 결국 천일이 되었다. 이것은 108배와도 닮았다.

시작할 때면 언제 다하나 싶지만 한배가 20배가 되고 어느새 50배가 되고 그러다 70, 80배가, 그리고 여지없이 108배가 된다. 그렇게 무슨 일이든 하나하나가 쌓여 끝에 도달한다.

이 모든 것은 책으로 배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몸으로 반복해 겪으며 알게 된 일이다.


느낌에 끌려가지 않고,

핑계로 물러서지 않고,

멀리 보지 않고 오늘 한 번의 실행하는 것.

수행은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매주 수요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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