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낯선 곳에서 헤매는 것, 서투른 나를 보는 것 모두 달가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이미 익숙하고 잘하는 영역이 있는데 굳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다시 초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늘 무언가를 배워왔다. 인생이 괴로워 뭔가 방법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색함을 견디고 그 시간을 통과하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새로 알게 되는 것,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반응하는 내 모습까지. 그래서 배움은 그 행위 자체로 수행이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적극적인 행동 뒤로 숨기고 싶은 어설픔, 잘하고 싶어 들뜨는 마음, 누구에게나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까지, 수행은 그런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었다.
조금 더 넓어지고, 조금 더 깊어지고, 전보다는 유연하고 여유로워진다. 와인, 명리학, 글쓰기, 불교, 명상.... 돌아보면 내가 공부해 온 많은 것들이 그랬다.
불교를 공부하고 매일 수행을 하면서 어떤 이득이 생기는지 스스로 실감하게 되자 자연스레 나누고 싶어졌다. 하지만 108배를 추천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명상을 제대로 배워보기로 했다.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니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처음에는 명상으로 수행을 시작했지만 108배를 하게 되면서 명상은 108배를 돕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절을 마치고 앉아 숨으로 고르고 한가로이 머무는 일. 그게 내가 아는 만큼의 명상이었다.
명상 지도자 과정 중 한 단체에 소속되어 명상에 관한 교학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명상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내가 해오던 명상이 무엇이었으며, 명상할 때 내가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막연히 좋다고만 여겨왔던 명상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나 혼자 쓰던 작고 어두운 명상이라는 방을, 크고 넓은 곳으로 확장 이전하고 환한 불을 밝힌 느낌이랄까. 훌륭한 스승님을 만났고, 함께 하는 도반들도 생겼다. 나의 명상이 다른 챕터로 넘어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명상을 배울수록 아침 수행의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다. 수행 중 명상이 중심이 되는 날도 있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수련회에서 경험한 긴 명상이었다.
나는 15분에서 20분 남짓, 짧은 명상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호흡을 보고 있다가 딴생각이 나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그 과정을 길게 가져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1박 2일 수련회에서 하루 종일 명상을 하며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계속되는 반가부좌 자세는 고관절을 뻣뻣하게 만들었고, 자꾸만 구부러지는 허리는 신경 써서 세워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다른 층위가 열렸다. 애써 고요해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덜 끄달려가는 순간이 왔다. 여전히 생각은 오고 가고 몸의 감각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 고요함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고요함은 처음부터 와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머물렀을 때 뒤늦게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후 배우게 된 위빠사나, 관찰 명상도 나의 수행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몸을 관찰하는 시간을 지나 마음을 관찰하면서,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했던 무아와 무상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외부의 자극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기자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내가 108배를 끝내고 고두례를 할 때 읊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겠습니다”라는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로 명상은 내게 수행을 거드는 보조적인 시간이 아니라, 때로는 수행 전체를 붙들어주는 중심축이 되었다. 길게 할 때는 1시간 가까이 앉아있기도 하는데 절을 하며 몸을 움직일 때도, 일상을 살며 감정에 흔들릴 때도, 사람을 만나고 관계 속에서 반응할 때도, 결국 내가 돌아와야 할 자리는 명상 안에서 길러지는 알아차림이라는 것을 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를 더 잘 해내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삶을 더 깊이 보고 더 넓게 받아내기 위한 바탕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나누기 위해 배우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그 배움이 나를 먼저 바꾸었다.
이제 명상은 내게 작은 방이 아니다. 아직 다 알지 못하고 여전히 서툴지만, 분명히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조금씩 걸어가는 일이 지금의 내 수행을 바꾸고 있다.
*매주 수요일,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