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불이 되어 세상을 밝히다
-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후기
오랜만에 마음을 다해 쓸 이야기가 생겼다.
장동윤 배우의 팬으로 시작된 여정이
예상치 못한 깊은 감정의 바다로 나를 이끌었다.
그가 목소리를 맡았다는 작품,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결심’과 ‘구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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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
태일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학교 대신 공장을, 연필 대신 미싱을 잡아야 했던 아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서울로 향한 그의 여정은
이 땅의 수많은 ‘어린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두운 공장 안, 환기도 되지 않는 공간,
허리를 숙이고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리는 어린 소녀들.
그 모습은 내게 낯설지 않았다.
미싱으로 우리 남매를 키워낸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10분도 안 돼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 어린 나이에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몸보다 높게 쌓인 옷들을 만들던
엄마의 꿈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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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시대>
결핵에 걸린 여공이 해고되는 장면,
‘일하다 병들면 버려지는’ 현실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아팠다.
전태일은 결심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존재했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던 시절.
그는 길거리로 나선다.
국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되레 폭력과 침묵으로 되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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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누구의 몫인가>
한 개인이, 그것도 22살의 청년이
이 모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결정을 한다.
자신이 아니라도 되었을 텐데
왜 하필 자신이었을까.
그건 ‘희생’이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책임’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선택이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바꿔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불꽃은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고,
그 빛은 누군가의 삶을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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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지금도 유효하다>
프리랜서로 잠시 살았던 내 삶 역시
출근은 없지만 퇴근도 없는 나날들이었다.
태일이의 외침이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잘 안다.
그래서 <태일이>는
‘과거의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에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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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전해진 묵직한 감정>
작화는 정말 인상 깊었다.
디즈니나 지브리와는 또 다른 결의 한국적 감성이
그 시대의 거리를 생생히 재현해냈다.
장동윤 배우를 비롯한 더빙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다만, 성우가 아닌 배우의 더빙에서 오는
미세한 어색함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어머니 캐릭터의 서사가
조금 더 설명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이 이야기의 감정을 해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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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5월, 우리의 태일이>
얼마 전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었다.
이제부터라도 그 하루만큼은
이 영화를 떠올리며
일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서 있는지를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었던 전태일을 기억하자.
그의 이름이, 그의 선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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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이 영화는 단지 전태일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록이자,
그 기록 속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마음이 무너질 때,
이 영화를 꺼내보면 좋겠다.
어느 날 당신에게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이
구원처럼 다가올 수 있으니까.
제목 태일이
감독 홍준표
출연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등
개봉 2021.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