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더이상 나는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보지 않는다

by 김현규 Sean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그 이후에 무엇을 선택하느냐다.


어떤 사람은 실수를 인정한다.

고개를 숙이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아프고 불편하지만, 그 선택 덕분에 다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남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바꾸기 시작한다.

조금씩 사실을 왜곡하고, 책임의 방향을 비틀고, 결국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 순간,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사람의 인생 위에 문제를 옮겨 적는 것뿐이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만든 결과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오해받았다.”

“나는 공격받았다.”


하지만 조직은 기억한다.

누가 문제를 만들었는지보다, 누가 책임을 피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동정은 잠시 따라올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더 잔인한 건, 그 패턴이 다음 조직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만 바뀌고, 무대만 바뀔 뿐 자기 합리화와 피해자 서사는 계속된다.


나는 최근에,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필요하게 다치게 할 수 있는지를 아주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지나오며 확실해진 게 하나 있다.


정직함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전략이라는 것.


실수를 인정하면, 관계는 깨질 수 있어도 다시 쌓을 기회는 남는다.

하지만 거짓으로 지킨 자리는, 언젠가는 더 큰 비용으로 무너진다.


조직은 실수를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임을 피하는 태도는 거의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람을 볼 때 능력보다 먼저 이걸 본다.


이 사람이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을 말하는 사람인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지.


피해자가 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남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치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선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않아도, 결과는 조직과 그 조직을 통해 충분히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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