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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등학생이 자퇴하는 이유

by anchovy

어제 신문 기사에서 고등학생의 자퇴가 점점 늘고 있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10년 넘게 학원계에서 일하며 자퇴, 혹은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치른 후 대학에 진학한 학생을 6명 정도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내가 가르치던 학생이 자퇴를 한 경우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경우였다. 극단적이라기보다는 진짜 최고의 악수를 둔 학생이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고 3, 그것도 2학기 시작 직전에 자퇴를 한 경우인데(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다.) 모의고사 성적도 그냥저냥 평범한 데다 내신 성적이 계속 하향곡선을 찍고 있는 학생이었다. 7년 전에는 외부 대회 스펙이 인정될 때고 검정고시 학생도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턱턱 합격하던 시기이니 꾸질꾸질한 고등학교 3년을 버리겠다며 자퇴를 강행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학원 원장 부인의 꼬임에 넘어가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예쁘고 순하게 생기신 이 원장 와이프께서는 내년에 꼭 SKY를 보내주겠다는 확신에 찬 사탕발림을 했고 넌 꼭 서울대나 고대는 가야 하니 과학탐구도 2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한 모양이다. 서울대는 과학탐구 2를 시험보지 않으면 정시 지원 자체가 안 되고 고대는 가산점이 있으니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심화 과학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좀 있어야 지원하고 말고 아닌가?


결국 이 녀석은 19살에 자퇴, 20살 입시 실패 후 21살에는 군에 입대했다. 이후 검정고시 고졸이라는 학력을 가지고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니 제대 후에도 연거푸 입시에 실패했고 25살에서야 지방 캠퍼스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 모든 진행 상황은 이 녀석의 여동생을 통해 들을 수 있었는데 집안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고 한다. (이 여동생은 계속 내 수업을 들었기에 진행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학원에 고 1 여학생도 비슷한 시기에 자퇴를 했는데 이 친구는 왕따를 당해 어쩔 수 없이 나온 경우였다. 남녀공학에서 전혀 꾸미지 않고 덩치도 큰 이 아이를 너무 놀려대는 탓에 중학교까지 상위권이던 성적이 뚝뚝 떨어지게 되었다. 아빠는 목동에서 꽤 유명한 병원의 병원장에 목동에서 제일 집값 높기로 유명한 곳에서 사는 아이라 그런지 너무 여리고 왕따를 견딜만한 깡이 없었다. 결국 고 1 2학기에 자퇴를 하고 (이것도 학원 원장 부인이 꼬심. ㅜㅜ) 검정고시는 다음 해에 통과한 후 갑자기 이과가 아닌 문과로 전향해 수능을 치렀다. 학원에서 이과 수학 진도는 빼기 힘드니 대학만 가면 된다는 논리로 문과시험을 보게 한 거다. 결과는 당연히 참패. 사회탐구는 만점이 나와야 1등급인데 몇 개씩 틀리고 국어도 3등급, 거기다 수학은 4등급! 이 녀석은 그렇게 대학입시를 실패한 후 갑자기 경찰공무원이 되겠다고 진로를 틀었고 결국 20살에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이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진짜 열심히 했으니.) 수학 학원에 수천만 원을 가져다주더니 결론은 공무원이 되었다는 거다.


이 두 명 말고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 후 대학입시를 준비한 친구들도 그들의 기대만큼은 좋은 학교에 진학하진 못했다. 그나마 제일 좋은 학교가 인하대였는데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해 자퇴 후 홍콩으로 유학을 떠났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고? 그냥 자퇴하지 말라는 거다. 어디서든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과연 최선을 다해 보기는 한 걸까 싶다. 왕따로 자퇴한 경우는, 그래 사춘기 청소년이니까 이해도 공감도 된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생활을 깡그리 버리는 것은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공부만 하려면 학원을 가면 되지만 학교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배우는 장소이다. 그런 역할을 무시하는 어른들로 인해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이 무너질 수도 있다. 아니 벌써 무너지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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