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chovy Jul 21. 2020

121. 나도 살이 찌는구나

내가 최고로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때는 고 3.

공부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 학생이었지만 고 3이랍시고 의자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있어서 그런지 난생처음으로 50kg대에 진입했다. 사실 수치상으로는 살이 쪘다고 어디 가서 우는 소리 했다가는 몰매 맞기 십상이긴 했지만 이전까지 워낙 빼빼 마른 체형이었던 나의 변화에 가족이나 친구들 놀라워하긴 했었다. 결국 50kg대 몸무게는 수능을 마치자마자 죽음의 다이어트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었고 20-30대의 나는 늘 날씬한 몸이었다. 그런 내가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사이.


당신도 살이 찐다. ^^

 

우리 집에 사는 뚜띠 아저씨한테 살이 쪘다는 얘기를 들으니 완전 대 충격이었다. 저 돼지한테 몸매 지적을 받는다고? 하. 근데 왜 내가 살이 쪘을까? 평생 말랐단 소리만 듣던 내가 왜! 왜! ㅜㅜ


이유가 뭐겠는가? 먹고살 만 해진 거다.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사회생활 무능력자인 내가 학원 강사 한답시고 이리 치이고 저리 까이면서 상처 받고 고생했던 시절에는 밥을 먹어도 살로 갈 영양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서툰 솜씨에 맡은 일을 나름 잘하고 싶어 끙끙대면서 에너지를 막 써댔으니 살이 찔 틈이 없었던 거다. 학원 생활을 하며 1년에 2일 쉴 때 나는 43kg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던 걸 보면 진짜 개고생을 했었던 게 분명하다.


43kg 나가던 시절에는 너무 바빠서 밥을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어 위는 작아지고 설사 밥을 먹더라도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가 안 되니 입맛이 돌아오질 않았다. 맞는 옷이 없어 뭘 입어도 빈티가 줄줄 났고 얼굴은 꺼무죽죽하니 못 먹고 고생하며 살이 쪽 빠진 난민 같은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원장이


예뻐서 뽑았는데 요새 얼굴이 아주 엉망이네요.


라고 망언도 했었지. 너 때문에 고생해서 그렇다 이 사람아! 여하튼 그땐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었는데 말랐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ㅜㅜ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 같다. 고생하며 빠졌던 내 몸매가 그리운 걸 보니 다시 고생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하는 건지. 참 나도 웃긴 아줌마다. ㅎ


이젠 40대의 나.

지금에 나는 빼빼 마른 실수투성이의 열정 넘치던 43kg로 절대 돌아가진 못할 것이다. 그때처럼 무작정 요령 없이 들이대는 무대포 정신에 깡으로 버티는 젊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력과 노하우가 쌓인 나는 마음의 여유를 얻고 거기다 몸매의 여유도(?) 가진, 여전히 노력할 줄 아는 선생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제자들에게 최고이고 싶은, 사교육 현장에 선생, Anchovy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20. 숙명여고 쌍둥이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