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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ul 23. 2020

122. 알람을 맞추고 10시에 연락한 학생

며칠 전 아침 10시.

휘파람 소리와 함께 온 카톡 하나.


학교에서 나눠 준 가정통신문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서


이거 어제 학교에서 줬어요.


라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이 카톡을 보낸 학생은 중 1 남학생. 내가 매번 수업마다 사춘기 소년이라고 놀리는데도 화 한 번 안 내는 순하고 착한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찍어서 보낸 사진은 학교 가정통신문으로 과학 관련 대회에 대한 내용이었다.


과학탐구 발표라는, 일종에 과학 보고서를 쓰는 건데 학교에서 과학 대회나 과학 관련 수행이 있으면 나한테도 미리 말해달라는 얘기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이런 과제는 시간을 길게 두고 방학 중 함께 실험도 하고 보고서 쓰는 법도 배워야 하니 실험 주제를 정하는 거나 수업 날짜도 미리 조정해야 해서 이렇게 여유 있게 말해주는 이 학생이 고맙기도 했고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이 녀석이 참 대견했다.


그런데 어제 이 녀석 수업을 하면서 더 큰 감동을 받게 되어 오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수업 시작하기 전 이 남학생이


선생님 원래 8시면 일어나세요?


라고 묻는 거다.


뭐 수업이 일찍 있으면 6시 반에도 일어나고 아님 새벽까지 쓸데없는 거 하면서 놀다가 낮 12시에도 일어나는 불규칙한 수면 패턴이지만 그래도 8시에 눈은 떠지는 편이니


응. 보통 8시면 일어나야지. 더 일찍도 일어나. ㅎ

 

라고 대답했다.


근데 이 녀석,


선생님께 일찍 연락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알람 맞추고 아침 10시에 카톡 했어요.


이런 배려는 너무 뜻밖이라 진짜 ‘심쿵’ 했다. 고작 14살짜리가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해줄 줄 알다니.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문득 지난날 새벽 3, 4시에 연락해서 문제풀이를 해달라던 고 2 학생이나 아침 7시 반에 전화해 오늘까지 접수할 자소서가 있는데 원장이 마무리를 안 해주니 지금 당장 과학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와서 마무리하라고 강요하던 학부모가 생각났다. 물론 내게 돈을 주며 비즈니스적 관계로 맺어진 관계지만 너무도 당연히 내 개인적 시간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이익 추구에만 몰입하던 그들과는 다른 이 아이를 보며 그간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와 불신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예전에 안 좋은 기억들로 좋은 사람들에게도 벽을 치고 있었을지 몰랐을 내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준 경험이었다.


사춘기 소년!

내게 이런 감동을 줘서 고마워.

가끔 내 글을 읽어주는 것도 고맙고. ^^

늘 지금처럼 남을 배려하는 변치 않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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