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의 생일은 - 과연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나 하는 거리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초등학교 때는 - 버터로 만든 빨간 꽃장식이 인상적이었던 케이크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생일이면 크건 작건 선물이라는 것도 있었다.
조금 더 커서는, 마땅히 불러 같이 축하받고 싶은 친구가 없어 별로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성인이 되면 많은 자유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마냥 기다려졌고, 그러고 더 지나서는 마땅한 꿈도 없고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게 두려웠다.
그렇게 생일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의 날이었지만, 여느 때와 똑같은 평범한 날들임에는 틀림없었고 그리고 또 그렇게 평범한 날들로 지내게 될 것이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생일이면 울리는 것은 (포인트를 받기 위해 회원가입 시 생년월일을 기재한) 이러저러한 제조사나 유통 업체로부터 혹은 이러저러한 세일즈맨으로부터 받는 축하 DM이 전부이지만, 더 이상 그 때문에 마음이 헛헛해지는 법도 없다.
아마 그건 "이제 내가 몇 살이 된 거죠?"하고 어머니에게 되물을 정도로, 나이 먹는 것에 무신경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애써 나이 듦을 외면하고 있거나.
운 좋게 주말이라 그리고 나를 얼마간 맘고생시킨 업무 보고가 끝난 다음날이라, 막내아들을 데리고 생일 불공을 드리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법당에 어머니와 나 그리고 아들이 함께 서 있자니 새삼 이것도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가 싶다.
나는 어쩌다 내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고, 나의 아들은 어쩌다 나의 아들로 태어났을까.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하던가. 그 많은 필연 중에는 고마운 이도 있고, 아직 미워하는 이도 있으며, 그립지만 그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가 있다.
모든 내 주변의 인연들에게 친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마 그 마음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내 두서없는 글처럼 주저리주저리 왜 그 사람은 싫은지, 왜 또 그 사람은 멀리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말하거나 누군가를 붙잡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그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으니 고맙다고 할 수밖에. 나의 모나고 비뚠 성격이 그들 탓이라면, 그들이 없는 나는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 테니까.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흔 후반에 이르러서야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가는 듯하다. 젊었을 때 '체념'이라고 불렀던걸 '순리'라고 까지 바꿔 부르진 못하더라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타협이나 비겁함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나이가 들어 현명해졌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인생에서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날은 '오늘'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조금 더 나이 들어 감이 싫지만은 않다.
그리고 한 때 세상의 순리라고 믿었던, 꽤 오랜 기간 서가에 잠자고 있던 책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자신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고 그들이 (그 책들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