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등교 못 한 그날의 기억은 있지만 그 이후는 아니다. 생일이 되면 심하게 몸살을 앓는 일이 언제부터 계속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십 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삼십 대 무렵 부터냐면 그 시절 또한 어떻게 흘러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다음 날 정도의 둔탁한 느낌과, 실연 혹은 가까운 지인에게 배신당한 듯한 마음의 무게가 꼭 그날만 되면 나를 덮친다. 내가 기억하는 최근 몇 년은 계속 그러했다.
나이가 들어서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딱히 이룬 것 없이 지나가는 시간과 맞물려, 특히나 연말이 생일인 덕에 덧없이 지나간 한 해의 무게를 온전히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생일 케이크의 촛불도 아이들이 불게 놔두는 것이라고. 그만큼 그날만 되면 살아간다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욕심 많은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 만족하지 못하는 그 못된 심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금 거창한 식사를 하고 나서도 '뭔가 색다른 것 하나만 더 맛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말로 아내를 질리게 만드는 그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고 싶은 나에 대한 원망 인지도 모른다. 한 해가 지나도록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이 존재의 무능함에 대한 탐욕의 질책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던, 세상이 감사와 환희 혹은 적어도 설렘으로 가득 차는 이 시절이 오면, 나는 나의 가장 축복스러운 날에 심한 앓이를 한다. 무기력과 무력감에 싸여 동네 커피숍에 않아 30분도 넘게 창 밖을 바라본다거나, 침대에 누운 채로 TV를 보다 잠이 든다. 그렇게 욕심 많지만 게으른 인간은 해마다 불어오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You deserve it.
...
내가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마땅히 가질만하다고, 너는 그럴만하다고 인정해주길 바란다. 이젠 네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너의 가정, 너의 아이들을 위해 참고 양보해야 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어차피 결국에는 그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큼 했으면 그래도 잘한 것이란 격려도 사양한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곳을 향한 배에 승선한 것과 도착한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니까.
아직 다다른 목적지도 없다. 그래서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의 심한 몸살로 끙끙댄다. 마음을 고쳐보려 해도 내키지가 않는다. 내 욕심이 나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너라면 충분히 욕심낼만하지'라는 말도 건네주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나는 아직도 욕심 많은 인간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렇게 앓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