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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성훈 Jan 23. 2022

그  골목 이발소로부터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행문과 여행 안내서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예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좁은 골목 풍경 사진과 함께 말이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한낮의 풍경이거나 빈 공간으로 대비되는 고즈넉한 골목들, 누군가의 삶이 켜켜이 쌓여온 흔적이라는 메시지는 유사하다. 다만 차이라면 아직도 그 삶이 지속되느냐 끊긴 옛 풍경이것.


40년 넘게 한 동네 살아간다 하더라도 (몰론 결혼 후 이사는 했지만 그래 봤자 걸어서 10분 거리다) 삶 각도를 조금씩 달리함에 따라 더 찾거나 덜 찾는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령 30년 전의 등굣길은 왼쪽, 지하철로 향하는 지금의 출근길은 오른쪽 골목과 닿아있다.


일요일 아침, 성곽길을 따라 한 시간여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뻔한 길을 놔두고 그 30년도 더 된 등굣길을 택했다(엄밀히 말해 하굣길 방향으로 걸었다). 물론 30년 전의 집과 지금의 집은 위치가 달라 끝까지 같은 궤적을 따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보다 더한 서울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싶지만, 사는 이 바뀌어도 학생 시절 지나던 골목집들은 그대로이다. 그밖에 병원이며 약국 그 늙어가는 주인과 함께 색을 바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점은 그리 쉽게 바뀌는데 말이다. 예전 어른들이 공부 열심히 하라는지 진작에 깨닫고 있었지만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하굣길 마주한 같은 반 친구의 옛 집.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 살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그러진 표지판처럼 다시 바로 잡을 새 없이 일방통행의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길을 지나 이젠 나의 옛 집과 지금의 집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달하고 만다. 그곳엔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함께 다니던 이발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말인즉슨 진즉에 사라지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작은 건물로 남아있다는 말이다.


이젠 기억 속에도 많이 희미하지만, 타일로 만들어 머리를 헹구던 곳이며 의자는 세 개쯤이었던가...

경찰서 앞에 위치하고 있어 제복을 입은 손님들이 많았다. 깊숙하게 뻗은 가게 안 쪽은 이발사의 집이 아니었다 싶다.


'잊히지 않는 한 살아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느 영화에 나온 구절인지, 어디 먼 나라의 속담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 내가 그 이발소를 기억한 순간 살짝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이발사의 손길에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백발의 머리칼을 맡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 그렇게 할아버지는 멸하지 않는 것일까?


'외로운 삶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고 말겠구나.'

퍼뜩 누군가로부터 잊힌다는 게 무섭게 다가온다.


우리는 말로써 혹은 생각으로 그 대상을 불러낸다. 이십여 년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나는 오늘 그렇게 불러내었다. 하지만 내가 불러낸 것은 그 실체가 아니다. 그분의 이미지일 뿐이다.


럼에도 나는 혹은 우리는, 삶의 조각들을 세상 여러 골목들에 뿌다시 주워 맞추고선, 조심스럽게 내려놓 반복한다. 나를 기억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기 위해 말이다.  


당시 종종 하교를 함께 한 이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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