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어지간히 잡히지 않는다면 그건 대체로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평온하거나 (심지어 행복하거나), 뭔가 다른 것에 지독한 욕망을 품고 있어 글쓰기까지 마음의 여유가 닿지 않는 경우다.
우선 전자는 아니다. 예전에 한 점술가가 '당신은 많은 것을 가져도 누리지 못하는 성향을 타고났다'라고 말해줬을 때에야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새옹지마' 혹은 '호사다마'를 떠올리며 자축하는 법 없이 조용히 넘기거나, 애써 불행의 가능성을 헤아려보는 성격의 소유자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출근길 라디오에서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의 신나는 노래가 나와도 즐거워하지 않는다. 가령 신나는 기분이라도 들면 그만큼 짜증 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믿기 때문이다. 야근을 부르는 엄청난 숙제가 떨어질지 모르니 자숙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건 뭐 거의 징크스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왜 '나는 즐겁지 아니한가?'에 대한 답은 나 자신에 있다. 속으로 곪아가는 성향이지만 그래도 글이라는 탈출구를 만들어 살 길을 마련해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실컷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나의 글을 소소히 읽어주는 방문객들이 있다 생각하면 즐겁기까지 하다. 방문자 수가 뜨고 좋다고 눌러준 알람이 울리면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위로에 속 좁게 쌓아둔 체증이 가신다. 물론 그중에는 '어이쿠, 링크를 잘못 눌렀네!', '뭐야 글이 뭐 이따위야!' 하며 나가버린 이들도 부지기수겠지만 말이다.
그럼 나는 요즈음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있는가? 무엇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는가?
말이 욕망이지 (욕망도 어떤 의미에서는 꽤나 규모도 크고 스펙터클한 모험을 품기도 한다), 매일매일 살다 부딪히는 이러저러한 욕심에 함몰되어 있다.
성과급, 승진, 이직 등 동기나 또래들의 앞서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들보다 못한 것도, 잘난 것도 있음을 알지만), 내 손에 쥐고 있지 않은 것들에 신경이 쓰이고 만다. 붉은 단풍잎이 노란 은행잎을 시샘하는 꼴이라 해야 할까? 미화하자면 말이다.
자신만의 오롯한 삶의 중심이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나와 겨루는 속도를 가지라고 인생 지침서는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맘대로 되지 않으니 그들도 책을 내고 돈을 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차라리 갖지 못한 그것이 너무나도 갖고 싶다고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실컷 소리치고 오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참 그것도 어디 대놓고 말하기 멋쩍다. 솔직히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그래도 이게 다 누구와 누구를 줄 세워 평가하는 조직과 사회에 살다 보면 생기는 마음인 것을.
작은 것에 마음이 쓸리는 걸 알면서도 치유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해가 뜨면 희망을 품고, 노을이 지면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그 저뭄에 가슴 아려하는 평범한 인간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진정 내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허기를 느끼는 게 체내 수분 부족 때문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란적이 있다. (음식물에 수분이 담겨있으니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이 아닌 H2O를 보충하기 위해 배고플을 느끼기도 한단다)
비루하게 별일 아닌 것에 결핍을 느끼고, 간절히 원하는 이러저러한 목표들에 나도 몰랐던 '수분'이 들어있지나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애당초 없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마음앓이는 무엇을 향한 심한 갈증일 터이고, 그 목마름이 천박한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꽤나 슬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