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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안테스 Oct 27. 2024

괜찮아란 말에 무너진 날

어른이 다니는 학교(12)

상담을 시작하려고 한다.

순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중3 때 전학을 왔거나,

학교에서 집이 가장 먼 순서를 나름의 원칙으로 정했다.


"이제 상담을 시작할 겁니다.

점심시간에 1명씩 밥을 먹으면서 상담을 하고,

그리고 저녁 면학시간에

한 명씩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3주 안에는 끝내려고 하니,

마지막 순서가 되더라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게요.

상담순서는 고민을 해봤는데,

66일간 외출도 안되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상황이라,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들고를

따질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그래서 나름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본교 진학을 위해 중3 때 전학 온 친구를

1순위로 하겠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떠나

왔을 거라 생각하면,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거라

짐작됩니다.


2순위는 학교에서

집이 먼 순서로 하겠습니다.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불안감이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집에 갈 수 있는 거리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3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다는 아이를 불렀다.

전학 온 아이는 2~3명 있었지만,

그 아이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했고,

뭔가 표정이 걱정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담시간에 맞춰 온 아이는

내 책상 옆에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괜찮아?"

눈가 주변이 빨개지더니 이내

눈동자가 눈물로 차오른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억지로 눈물을 참는다.

억지로 눈물을 참고, 소리를 참으니

끅끅대던 소리가 점점 딸꾹질하듯이 커진다.

"참지 말고 그냥 울어.

선생님 잠깐 5분간 나갔다 올 테니...

참는 게 미덕이 아니야.

그냥 울어. 소리 내서"


어깨를 들썩이며,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를 혼자 두고 나왔다.

때로는 말 없는 위로가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때로는 그냥 울어버리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5분 정도 후에 돌아오니

아이는 어느 정도 진정되어 있었다.

"입학식 날 부모님 뵙고 울었어?"

"아니요"

"우리 학교 원해서 온 거 아니야?"

"부모님은 걱정하셨는데, 제가 자진해서 왔어요.

아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원해서 왔고, 부모님 속상할까 봐

잘 지내는 척하다가, 갑자기 터진 거야?

괜찮을 줄 았았는데, 생각보다는 힘들어?"


"네... 이 정도로 제가 약해질 줄 몰랐는데,

아까 7교시 강당에서 학교규칙 전체 교육 중,

기숙사 반입하면 안 되는 물품 안내가 있었어요.

자판기에 있는 것 말고는,

외부에서 반입하거나,

들여오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음식 같은 거는 안 되는 줄 아는데,

고카페인 에너지음료를 잔뜩 가지고 왔는데,

그걸 반납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요"


"나는... 나의 괜찮아란 말이

너무 아련하게 들려서,

오열한 줄 알았더니,

원인은 카페인 음료였구먼..."

조금 전 그렇게 울었던 아이인가 싶게, 배시시 웃는다.

"그런 건 아니고,

선생님이 괜찮아라고 하시는 순간

갑자기 억지로 참아왔던

마음이 한꺼번에 폭발했어요.

사실...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만류했는데,

제가 고집 피워서 온 거라,

힘들다는 말도 못 하겠고.

그리고 중학교 때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매일 1개 이상 먹으면서,

공부하는 게 습관이 돼서

약간 의존하게 된 것 같아요.

여기 와보니 잘하는 친구들도 많고,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이 점점 없어졌어요.

중학교 때는 아침 1교시 들어가기

전에 에너지 음료를 먹으면,

정신이 맑아져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더 이상 먹지 못하면,

이제 무엇으로 나를 다잡아야 하나,

어떻게 집중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것들이

기숙사 입소하고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던 며칠과 겹쳐지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 거 같아요"


누구나 마지막으로 남겨 놓는 패가 있다.

가끔 그것이 쓸데없는 자존심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되기도,

가족이 되기도,

부모, 자식으로서의 책임감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참아보려고

꾹꾹 이겨보려고 했을 것이다.

이 아이를 무너지게 한 건

에너지 음료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아무 말 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그냥 에너지 음료였을 뿐...


한참 동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가끔 놀려먹기도 하면서...


"알았다. 그런데 에너지 음료는

건강을 떠나서 끊어야 할 것 같다.

에너지 음료가 너의 마지막 보루가 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내년에는,

고3 때는,

대학교 1학년때는,

취업 1년 차 때는,

앞으로 너에게 올 무수한 첫 시작의

유일한 파트너가 에너지 음료인 건

너무 슬프잖니.

선생님이 아침마다 드립커피를

내리니까 아침밥 먹고 와.

커피도 몸에 좋지는 않지만,

고함량 에너지 음료보다는 낫겠지.

8시 20분에 커피 한잔

우편함에 올려둘 테니

가져가"

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도,

그런 것도 못 이겨내냐는 질책도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의 온기는 전해주지 못하니,

매일 따뜻한 커피 한 잔 줄 수밖에.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

니 옆에 커피 같은 친구 한 명 서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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