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자마자 커피를 내리며 온종일 책만 붙들고 있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대개 설레지만 가끔 막막함을 느낀다. 내키든 내키지 않든 의자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독서대 위에 책을 올린다.
우선 띠지와 표지와 책날개에 적힌 글자부터 읽는다. 작가 소개나 추천사나 본문에서 발췌한 글 들이다. 띠지는 바로 제거해서 버린다. 지극히 개인 취향이지만 걸리적거리며 종이 낭비 같다. 스테이플러나 테이프로 고정해서 책갈피로 쓰려 했지만 손이 안 간다. 적잖이 지장을 주는 겉표지도 벗겨서 보관한다(책장에 꽂을 때 다시 끼운다).
목차를 대강 훑고서 본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이십 쪽 뒤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한 권에 할당된 한 시간 중 절반에 해당하는, ‘삼십 분 동안 소화할 분량’이다. 본문이 십일 쪽부터면 삼십 쪽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식. 준비를 마쳤으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스톱워치 앱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읽다가 중요하거나 괜찮다 싶으면 빗금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스티키 북마크를 붙인다. 그중에서도 더욱 중요하거나 새기고 싶은 내용은 형광펜과 목공 연필로 진하게 밑줄을 긋는다. 여운이 깊게 남는 글귀는 빈 곳에 한 번 더 쓰고, 어려운 책은 틈틈이 내용을 요약하거나 정리하고, 습관처럼 교정을 보고, 저자가 한 말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거나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적고…. 편집이라고 하기는 민망하지만, 이따금 아쉬운 부분을 보충하거나 취향에 맞게 표현을 바꾸기도 한다.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다 읽은 뒤에는 앞표지 뒤쪽 넓은 여백에 ‘이천이십오 년 이 월 이십팔 일 한 시 이십구 분’과 같이 읽은 시각을 기록한다. 그다음으로 달력과 다이어리와 아이폰 일정 앱에 ‘김진영, 《상처로 숨 쉬는 법》 完’과 같은 식으로 적는다. 마지막 절차는 블로그의 ‘밑줄 그은’ 게시판에 타이핑하는 작업인데, 스티키 북마크로 표시한 본문을 하나씩 옮기는 일이다. 메모를 남긴 곳은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 게시글로 등록하면 비로소 끝이다.
이전에는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트래블러스 노트에 필사까지 했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때로는 시간이 아깝고, 요즘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시집을 읽고 나서만 그런다. 실은 살짝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해도 머릿속에 뭐가 남는지 잘 모르겠다. 무의식 어딘가에는 남기를, 조금이라도 새겨지기를, 겉핥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음 같아서는 독서 노트 작성까지 루틴으로 만들고 싶으나 욕심인 걸 안다. 아무래도 엄두가 안 난다.
예전에는 한 시간을 읽는다고 치면 오전 열한 시에 시작해서 열두 시에 끝냈다. 요새는 ‘읽는’ 데만 한 시간을 보내려면 두 시간에서 서너 시간까지 걸린다. 한 권 읽을 때마다 이러다 보니, 세 권씩 읽으면 별다른 일정이 없어도 새벽 두세 시가 되는 건 금방이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멍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아서다.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보는 듯할 때가 빈번하다. 이건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앓고 난 뒤로는 더 심해진 증상이다. 읽고 또 읽어도 찝찝하다. 억지로 버티면서 한 쪽씩 넘기는 느낌이다.
나머지 하나는 집중이 잘 안 돼서다. 불편할 정도로 잡념에 자주 시달린다. 또,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등 몸이 안 따른다. 그나마 잡생각은 수첩에 비우면 한결 나아진다. 옆길로 새다 보면 끝이 없고, 아예 무시할 수는 없고. 그러다 찾은 방법이다. ‘나중에 뭐 해야지’든 다른 무엇이든 스톱워치를 멈추고 수첩에 쭉 쓴다. 잠시 쉴 때 그 목록을 보고 필요한 목록만 To Do List를 처리하듯 해결한다.
이 밖에도 강박이라 해야 할까, 더 정확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거나 글 쓸 때를 고려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단어 뜻을 잘 모르거나, 대강은 짐작하더라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스톱워치를 멈춘다. 그러고 나서 사전에 검색해서 책에 베껴 쓴다. 이를테면 단어 ‘A’를 검색했는데 ‘A는 B이며 C이다.’라고 나오면 ‘B’와 ‘C’를 검색하게 될 때가 잦다. ‘단어 파고들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어 수집’이라고 몇 년 전부터 소소하게 하는 일도 있다. 뉘앙스라든지 어감이라든지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글자의 모양새라든지, 나와 결이 맞는 단어라든지 하는 걸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그걸 따로 옮겨 적는다. 이러면 단어를 검색하는 데 보내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아무튼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면서 삼십 분 읽고, 쉬고, 삼십 분 마저 읽고, 끝내고. 두세 번째 책도 그러다 보면 자야 할 때를 넘기게 된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렇다. 몸이든 정신이든 건강하지 못한지라 읽기만 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거슬리는 강박 또한 여럿 있는 듯하여 더더욱 쉽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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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 산문』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