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홈페이지마저 없어진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지도 교수님이 추천하셨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다른 정보가 있는지 여쭤봤지만 기자라는 점 말고 들은 게 없었다. 조기 취업 신청 서류를 제출하고 기타 동호회에 활동 못 한다 알리고 회사 근처에 거주할 곳을 구했다. 누런 벽지와 책상 밑으로 들어간 침대와 어두컴컴한 조명, 방에서 나오면 저 멀리 보이는 화장실. 말로만 듣던 고시원을 직접 본 뒤에 창문 있는 고시텔로 정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교양 과목 하나를 뺄 수 없었다. 무조건 강의실에 와서 수업을 들으라고 말씀하셨기에 하는 수 없이 평일 하루를 쉬었다. 구두 약속은 안 되고 서류로 작성해서 사인을 받아 오라는 요구도 있었다. '목요일은 교양 수업을 듣기 위해 근무를 안 하겠습니다. 대신 토요일에 따로 출근해서 일하겠습니다.' 따위를 적어서 대표님께 사인받고 내 사인도 넣어서 가져갔다. 지옥철 9호선을 타고 가다가 환승해서 기차역까지 가고, 또 다른 기차역까지 두 시간 반 걸려 도착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에 갔다. 오십 분 동안 수업을 듣고 같은 절차를 밟아 고시텔로 돌아왔다. 토요일에 출근하면 대개 자막을 타이핑했다. 영상을 틀고 한글 프로그램을 켜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받아 적었다. 영수증 정리도 했던가, 사무실에 혼자 있었기에 크게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다. 교양 과목 제목은 '자기개발과 진로탐색'이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더 있긴 했다. 회사 측에선 내가 카메라와 영상 편집에 능숙한 줄 알았고 나는 사진 기자라는 말은 듣지도 못했다. 내막은 지도 교수님만 아실 테다. 여하튼 입사 첫 주 금요일에 〈막판로맨스〉 제작 발표회에 갔고 이후에도 여러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팀장님과 선배를 따라갔던 서울국제음식영화제, 무대 위로 올라가서 찍고 외국인 관광객한테 허락을 구하고 찍었던 유러피언 크리스마스 마켓, 평생 볼 연예인을 다 봤지만 전쟁 같았던 더 서울 어워즈, 연습 삼아 카메라로 수백 장 찍었던 마스크팩 브랜드 론칭 쇼, 렌즈가 깨진 줄 알고 식겁했는데 렌즈 필터라 안심했던 모교 행사, 대리님과 함께 가서 괜찮은 사진을 꽤 건졌던 한국콘텐츠진흥원 쇼케이스, 하루를 바쳐서 결과물을 냈던 크리스마스 특집 기사, 새벽부터 택시 타고 가서 기자와 팬들 사이에 껴 열심히 찍었던 뮤직뱅크 출근길.
부족해서 그랬겠지만 취소된 현장도 많다. 김장축제, 미즈 실버 코리아, 드라마 제작 발표회 등. 무엇이 어려웠나 곱씹으면, 우선 생각지도 못한 카메라를 다루느라 애먹었다. 이론을 공부하고 카메라를 가져가서 연습해도 잘 안 됐다. 번번이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카메라를 두 대씩 멘 채 렌즈를 교환하고. 플래시를 다룰 줄 몰라서 안 된다 싶으면 다른 걸로 갈아 끼우고. 방향을 위로 올렸다가 앞으로 조정하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플래시는 터졌다 안 터졌다 하고. 다른 촬영 기자님들 사이에서 자리를 확보하려 애썼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그나마 포토샵이 있어서 어지간한 사진은 건질 수 있었다. 크롭으로 프레이밍하고 수평을 맞추면서 결과물을 냈다. 노출이 심히 과부족할 때만 빼면 나쁘지 않았다. 돌아보면 느린 것 외에는 괜찮았고 사고도 안 쳤는데 자신감 좀 가질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으면 영수증 정리까진 안 했을 텐데.
다행히 사람들과 잘 지냈기에 회사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선배 한 명은 말 놓고 누나라 부르라 했으며 평소에도 자주 전화하고 업무를 도와 줬다. 네 살 어린 여자 선배는 조금 난감했다. 처음 겪는 유형이었는데, 첫날부터 말을 놓자고 하더니 나중엔 "지수야", "야" 하고 불렀다. 이런 면을 제외하면 성격이 시원하고 재밌었다. 사원들끼리는 나름 끈끈했다. 생일 같은 기념일을 잘 챙겨 주고. 일 끝나고 치맥하고.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다. 튕기는 척했지만 좋았다. 첫 사회생활이기에 소소한 꿈도 있었다. 돈 모아서 어학원을 다녀야지. 나도 선배들처럼 좋은 기사를 써야지. 교재를 사고 틈틈이 온라인 신문을 필사하며 그땐 그랬다. 스며들고 싶어선지 오래 다닐 거라 믿었던 건지,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슬리퍼를 사고. 푹신한 방석을 사고. 굳이 안 사도 되는 어깨 마사지기를 사고. 짐을 늘리는 한편 작은 꿈에 설렘을 느끼며 그랬었다.
이천십칠 년 십이 월 이십일 일에 대표님 방으로 불려 갔다. 많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회사랑 안 맞는 것 같다, 이번 달까지만 나와라, 아들처럼 생각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와 같은 말을 들었다. 갑작스럽기에 처음엔 울컥했다. 흐를 새도 없이 쏙 들어가긴 했다만. 한 시간 넘게 본인 인생 얘기하고. 자식 얘기하고. 난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싶고. 김빠져서 울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혼잣말이 끝나서 나왔을 때 대리님이랑 눈이 마주쳤다. 되게 아련하게 웃었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그 길로 바로 회사 밖으로 나와서 걸었다. 슬픈 노래를 듣고 또 울컥했지만 눈물은 안 나왔다.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지를 샀다. 회사로 돌아가기 전에 고시텔에 들러서 신발장에 넣었다. 어디냐고 묻는 메시지가 왔다. 생일인 다른 선배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 하니 빨리 들어오라는 말이었다. 누구는 잘렸는데 누구는 생일이고. 가서 축하해 줬다.
시월에 일을 시작해서 인턴 기간 자체도 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에 잘렸을 뿐이며 안 좋은 소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졸업이 취소됐단다. 전과하기 전에 들었던 전공이 교양 학점으로 인정됐고, 결론은 전공 학점이 부족해서 졸업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학과에 확인하고 도서관에 확인하고 조기 취업 서류 낼 때 또 확인했는데 문제 없다고 하지 않았냐, 다 통과시켜 주지 않았냐고 따졌지만 살짝 웃으며 어쨌든 안 된다고 말했다. 십이월 말에 퇴사해서 다음해 일월 중순까지 우울해하며 지냈다.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산 노트북과 할부 금액 4개월 치만 남았다. 덧없음을 느끼고. 이게 뭔가 싶고. 그러면서도 배가 고플 때마다 대충 때우기 싫어서 밖으로 나갔다. 한겨울이라 더 그랬을까, 동네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처음 먹은 순대해장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같은 곳에서 또 먹어도 한참 지나 다른 곳에서 사 먹어도 그만큼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십 년 가까이 돼 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상처를 주면서도 나쁜 사람은 안 되고 싶은 대표님. 말이 앞설 때가 많은 듯한 국장님. 단 둘이 있을 때 얘기를 해 주시곤 했던 부장님. 그동안 마음고생하고 고민이 많으셨을 팀장님. 언제나 포커페이스인 차장님. '서서히'가 관계의 적당한 속도로 느껴지던 선배님. 단발이 잘 어울리는, 내게 블로그를 잘 봤다고 말씀해 주셨던 선배님. '고생고생'과 특유의 말투가 인상 깊은 주임님. 교류가 적었던 선배님. 온도차가 컸던, 한없이 차갑게 느껴지다가도 편하기도 했던 대리님. 공과 사의 경계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선배님. 가끔씩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시곤 했던 선배님. 네 살 어리지만 친구 같고 나름의 방식으로 챙겨 주는 게 눈에 보였던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 선배님. 조심스러움과 다가오려는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던 글친구 선배님. 유일하게 누나라고 불렀던, 내가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한 선배님. 직장, 사회생활, 자취, 서울 생활 전부에서 처음을 선물해 주신 선배님들. 생일 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는 여전히 영수증 일기에 붙어 있다. 그때 만든 닉네임 '우울한수박'도 바꾸지 않아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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