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정직원과 방송국 계약직 둘 다 붙었고 전자를 택했다. 출근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서울문고가 부도났으며 동기 한 명이 관둬서 출근하지 않았다. 내가 취업한 곳은 '반디앤루니스' 이름을 달 예정이었다. 어수선함은 하루하루 바삐 움직이다 보니 땀과 함께 휘발됐다. 수만 권을 나르고 빈 서가에 꽂았다. 유월 중순이지만 에어컨은 이삼 주쯤 지나 가동됐다. 이튿날부터 서점이 구색을 갖출 때까지 뜯고 옮기고 입력하고 채웠다. 서비스직이 아니라 단순 노동직 같았다.
파렛트를 감싼 비닐에 칼집을 내고 뜯는다. 포장된 책을 철대차에 쌓아 옮기고 장르별로 나눠 한 사람씩 붙는다. 거래 명세서대로 왔는지 확인하고, 바코드 스캐너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가나다순에 맞춰 꽂고. 서가가 꽉 차면 도난 방지 스티커를 붙인다. 정사각형 스티커 천 개가 돌돌 말린 형태다. 적당한 길이로 잘라 오른손에 쥔다. 왼손으로 책을 펴서 붙일 위치를 확보하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부착한다. 하다 보면 속도가 붙어서 손맛과 몰입감이 좋다. 끝난 뒤에는 PDA로 위치를 등록한다. 한 줄씩 작업해야 하며 권수가 안 맞으면 흐름이 끊기고 귀찮다. 시집은 가볍고 부피가 작지만 한 번에 처리할 양이 많고, 문제집은 크고 매끄럽고 무거워서 손목에 부담된다. 아동 도서는 크기와 무게가 제각각이며 개성 넘치는 편이다. 가끔 바코드가 뒤표지에 없고 책등에 있거나 식별하기 어려우면 난감하다.
어지간히 진행됐을 무렵 문구류 진열대에서 얼쩡댔다. 관심 있다는 말을 흘렸더니 의도대로 담당자가 됐다. 리스트를 받아 마흔 개 넘는 업체에 일일이 연락했다. "문구류를 담당하게 된 누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하며 발주는 어떻게 넣는지, 매출 보고는 어떻게 받으시는지를 확인했다. 겸사겸사 직접 들르신 분들도 계셨다. 뭉뚱그려 문구류라 말했지만 마스크와 이어폰과 목 베개와 키덜트 완구 등 다루는 품목이 여러 가지다. 어느 업체가 어디에 있는지 외우는 게 일이었고, 문구류로 빠졌어도 도서 쪽 업무를 계속 익혔다. 제로페이와 문화누리카드 적용, 카운터 교육, 라운지(스터디룸) 도입, 종이 봉투가 든 박스로 한가득한 창고, 여기저기에 나눠 보관하는 재고, 오픈 이벤트 진행…. 익숙해질 틈 없는 와중에 문구류 아르바이트생이 두 명 들어왔다. 카페에서 음료를 사 주며 업체 위치와 특징을 설명했는데 둘 다 금방 외웠다. 나보다 훨씬 빨라 놀랐다.
나름의 루틴과 요령이 생기니 재미가 붙었다. 메신저나 이메일로 원하는 요일에 매출 데이터를 전송하고, 업체 양식에 맞추거나 필요한 목록을 정리해서 발주 요청하고(자체 발주하시는 업체분들 감사합니다), 매대 정리하고. 아이들 장난감 쪽은 손이 많이 갔다. CCTV 사각지대에서는 도난이 빈번했기에 자주 들렀다. 신규 업체 관리하기, 매대 위치를 변경하거나 통합하기, 시필지 관리하기, 택배 오면 가격표 없는 물건에 가격 라벨기로 표시하기. 그런대로 할 만했고 시간도 잘 갔다. 다만 끝없는 연락 연락 연락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휴무일이라 자거나 외출했을 때 걸려온 전화와 울리는 메신저 알림음. "손님이 이거 찾으시는 데 혹시 어디 있는지 알아?" "바코드가 안 찍히는데 혹시 얼만지 봐 줄 수 있어?" "저희 몰랑이 캐릭터 있어요?" 문구류 업무는 나만 알았다. 일하고 있을 때도 동료와 알바생들이 번갈아가면서 날 불렀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구든 책이든 찾아 드리고. 음료 쏟으면 가서 닦고(카페는 한 명씩 근무해서 서점 직원들이 도와 줬다). "누구 앨범 있어요?" "혹시 언제 들어와요?" "주차 어디에 해요? 무료예요?"라고 묻는 분이 많았다. 손님 관련해서는 계산하거나 찾아 준 게 거의 전부라 특별한 기억이랄 게 없다. 따지고 보면 손님은 아니었던 한 분을 제외하면. 오픈 준비가 한창이던 날에 삼사십 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계단을 내려왔다. 다가갔을 땐 이미 찰칵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있었다. 말없이 사진을 십수 장 넘게 찍은 그는 휙 올라갔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건 말건 뭘 하건 개의치 않는 태도로. 말을 걸 엄두가 안 나는 무표정과 가만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분위기. 인지 부조화가 와서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이만저만 굴러가는 사이에 여럿이 관뒀다. 다달이 몇 명씩, 무사히 넘어간 달이 없었지 싶다. 서점 알바가 둘인가 셋 관뒀고 카페에서도 한 명이 관뒀다. 정직원은 나를 포함한 신입 셋 다 그만뒀다. 나머지 둘은 대충 둘러대고 관뒀으며 나는 다른 사정이 생겨서 그리됐다. 모두 한 사람 때문이다. 그는 관리사무소 직원분들과 사이가 안 좋았고 문구 쪽 담당자분 몇몇이랑은 싸웠다. 연락을 이어 가는 건 나였기 때문에 불편했다. '불같은 성격으로 쌈닭처럼 다닌다'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말뿐이면 그나마 나았다. 툭툭 치는 것도 거슬렸지만, 불쑥 나타나 내 배와 엉덩이를 움켜쥐거나 주물럭댈 때는 소름이 끼쳤다. 화들짝 놀라면 그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웃었던 사람. 경력을 속여서 취업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며 자랑했던 사람.
시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을 계기로 관뒀다. 서울 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계속해야 하나, 의미가 있나 하는 고민을 접고 본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나에게 조금만 더 나와 줄 수 없냐며 붙잡았다. 전달에 여자 동기가 관뒀고 남자 동기는 다음 달까지만 다닌다고 한 상황이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자 바로 포기했다. 바로 관두진 않고 십일 월 칠 일까지 출근했다. 삼일장을 치르고 납골당에 안치하고 다시 서점으로 가서 일했다. 근무 시간에 짬을 내서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릴 글을 쓰기도 했다. 서울에 와서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하고.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중간쯤에서 타협해서 서점에서 일하고. 고시텔에 살다가 전셋집으로 이사 가고. 작사 학원에 못 다닌 것 빼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봤다. 지금 내려가면 다시 못 오거나 한참 걸리겠다 싶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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