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어머니는 일터로 복귀하셨다. 매일없이 페트병에 든 소주를 드셨다. 마시면서 우시고 다 마시고 우시고. 나날이 울음에 녹아 가라앉았다. 해가 바뀌어도 우셨고 조금씩 횟수는 줄었지만 일 년이 지날 때까지도 우셨다. 같이 있을 때에도. 혼자 계실 때에도. 문을 닫고 있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오 년 동안 산 아파트에서, 동네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고 하셨다. 닳지 않는 얘기를 듣고 들었다. 아는 얘기를 또 들었다. 애초에 그러려고 왔으므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얘기도 듣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는 얘기를 듣고. 이 시기에는 과호흡 때문에 우황청심환을 챙기고 다녔다.
다시 뭐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친구가 코딩을 추천했다. 요즈음 국비 학원도 있고 연봉도 적지 않게 받을 수 있다면서. 바로 학원을 알아봤고, 기다리는 동안 정보처리기사 필기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공부만 했다. 사람도 거의 안 만나면서. 어머니가 일하러 가셨을 땐 그나마 나았다. 퇴근 후나 주말엔 이어플러그를 껴고 공부했다. 저녁 먹을 때가 다가오면 마음이 불편했다. 불안과 스트레스 따위는 구석으로 치웠다. 모의고사를 풀었더니 시험에 붙을 정도의 점수는 나왔다. 커트라인이 60점이면 모의고사 3회 평균이 60점대 중후반 정도였다.
그 즈음 국비 지원 학원에 갔다. 간단한 테스트를 봐서 통과했고, 며칠 지나 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갔다. 둘째 날에 문득 '여기에서 뭐 하는 걸까' 싶어 멈칫했다. 관심 없는 분야인데. 코딩을 권유받은 적이 처음이 아닌 데다가, 그때도 나랑 안 맞는다며 거절했는데. 쫓기듯 취업률 하나만 보고 뛰어들었구나. 새까맣게 잊을 정도로 신경을 못 썼구나. 수업을 들은 뒤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틀 나가고 그만뒀다. 다행히 일찍 말했기에 중도포기로 인한 패널티는 없었다. 공부한 시간이 아깝지만 자격증 필기 시험도 안 봤다. 교재는 친구에게 줘 버렸다. 넉 달을 날리고 '뭐 하지'라는 익숙한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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