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승 May 12. 2023

무늬만 대표이사

아빠가 하는 사업이 아닌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 현금 흐름이 일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돕겠다는 나의 비전에 도달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새로운 사업을 도전하고 싶었다. 2020년에 코로나가 창궐한 뒤 우연히 알게 된 대표님은 이커머스 사업을 통해 매출을 일으키고 있었고, 침체된 경제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 대표님은 와디즈 펀딩 역대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문득 궁금했다. 이커머스란 무엇일까? 

그래서 그 대표님을 따라다녔다. 꾸준히 밥 약속도 잡고, 나도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연승아, 그냥 해봐!"였다. 그런데, 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두렵다는 말을 반복할 뿐 시도를 하지 못했다. 아무리 사업을 알려줘도 나는 시도하지 못했다.


어느 날,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말만 하는 나에게 그 대표님은 연승이가 1년 동안 같은 말만 반복한다며 답답해하셨다. 나는 두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네가 정말 두려워하는 그것을 시각화해보자"는 말을 해주셨다. 시각화해보니 내가 만든 제품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여있고, 투자금을 잃은 채 재고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실패가 두려워 시작이 두려웠던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는데 엄청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막막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무작정 온라인에서 가장 잘 팔리고, 요즘 핫한 제품이 무엇인지 찾았다. 그리곤 어떤 의자를 발견했고, 똑같이 만들어서 판매하면 그들과 비슷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 과정에 금형, 사출, 목업, MOQ 등 그 어떠한 단어도 모른 채 무작정 경쟁업체 문을 두들겼다.


"어떻게 오셨어요?"

 

미팅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백팩 하나 메고, 오른손에 수첩을 든 상태로 "대표님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을 열어준 여성분이 미리 약속을 했는지 물었고, 나는 당연히 안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몇 분 뒤 경쟁업체 대표가 나왔고, 나는 1시간 뒤에 다시 오겠다며 문을 열고 도망쳤다.


나와서 무작정 회사 부장님에게 전화했다. 1시간 뒤 여기로 와줄 수 있냐고 말했다. 제조 업계에 꽤 오래 계셨으니 어느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부장님이 올라가서 어떤 대화를 하면 되겠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나름 계획이 있는 줄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계획도 없었다. 무늬만 '대표'명함을 가진 풋내기의 어리숙한 행동이었다.


나는 올라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경쟁업체 대표에게 바로 물었다. "똑같은 제품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만드셨어요?" 돌아오는 답변은 판로가 있냐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일단 판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많이 파실 수만 있으면 총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다시 연락드린다고 말한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총판이 뭔지, 금형, 사출, 목업, MOQ 등 여러 단어가 오갔는데, 아는 게 단 한 개도 없었다. 제조업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애플, 스타벅스, 맥도널드, 현대, 삼성 등 여러 대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책을 통해 많이 배웠지만 그들이 내린 의사결정을 배워봤자 1인 기업으로 시작하는 21세기는 너무도 달랐다.


지금도 생각할수록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때 미팅에서 나는 많은 걸 배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글로만 배운 OEM, ODM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포기하고 말았다. 금형을 만드는데만 3,000만 원. 제품을 만들어도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케팅은 뭔지, 어디에 어떻게 올려야 할지 막막했다. 또다시 나는 막막함이란 큰 벽에 막혀 어떠한 것도 하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믿음의 선배들이 지켜온 신앙의 사명(死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