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툴루즈 로트렉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150여 년 전 파리에서나 2020년대의 서울에서나. 푸석해진 눈으로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얼굴을 바라보면, 거기엔 ‘이렇게 살아도 좋을까?’하는 의인화된 후회가 덩그러니 놓여있어. 이렇게 또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그리고 울렁거림이 진정되면 위태롭게 일상을 살아내겠구나.
적어도 반 고흐나 로트렉은 죽어서 고귀한 명당에 이름이 새겨졌으니, 대낮에 괴로워하고 자격지심으로 다시 술집을 찾는 일도 예술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강박과 알코올중독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만한, 고작 정신질환 케이스 중 하나쯤 되려나? 괴로운 정오의 햇빛, 따가운 모니터 뒤 눈초리들을 견디고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또 술 한 잔을 그리워한다. 내가 싫은데, 몸뚱어리는 싫은데, 불안하게 잠들고 싶지 않은 머리가 나를 지배한다.
죽고 나서 어떤 명당에 이름이 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19세기 어떤 예술가는, 21세기 현생하여 지금도 모니터 앞에서 마음과 글과 표현을 두고 씨름을 하고 있다. 한껏 머리는 예열되다 못해 너무 뜨거운데 쏟아지는 건 답답함이라 이내 결실 없이 지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버리면, 나의 맥락을 모르는 아버지는 또다시 게으른 나를 다그치겠지. 독립한 지 오래되어 같이 살지 않음에도, 마음속에는 쉬는 모습 없이 무언가에 정진하는 아들을 바라는 아버지가 나를 나무라겠지.
그날 밤은 어쩌지도 못한 하루를 맥주 한 캔에 붙들다가, 마치 가라앉는 <겟 아웃> 주인공처럼 어둠을 향해 서서히 추락한다. 내일만큼은 마음에 허공을 품지 않았으면, 내일만큼은 꽉 채워졌다면 좋겠다. 그건 가라 앉기 싫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