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봄도 없이 가을은 가고>
나를 위한 큰 결심을 하면 사람들은 괜찮냐고 질문할 수 있다. 사람들은 비어 버린 눈동자로 지레짐작 내 앞의 현실을 해석하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질문 들에 손톱이 물어뜯기는 것 같이 거슬리고 따가워서 눈가가 벌게질 법도 하다. 그래도 그런 질문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 난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끝내 귓바퀴로 흘러오는 말, 사실 제일 공허해서 듣고 싶지 않음에도 들려온다. '그럼에도'.
귓바퀴에 들어온 이 부사(副詞)와 뒤따르는 문장들은 다른 귀로 흘러나가지 않고 내 눈동자와 입가와 가슴속에서 탱탱볼처럼 계속 퉁긴다. '그럼에도' 뒤에 나열되는 단어들은 결국 모든 게 나약한 나에 대한 처방이거나, 힘없는 저 귀퉁이의 누군가가 겪는 것이 '어쩔 수 없다.'라는 맺음말이기 일쑤였다. 그건, 너무 가슴이 아리다.
시를 쓰고 책으로 엮다 보니 여기에는 나의 불안함과 그 불안함을 담은 시선으로 본 나의 세계가 모여있다. 난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라 이 문장들이 어떤 온도로 읽는 이에게 느껴질지 그 또한 불안하다. 그러나 이렇게 라도 글들을 내보여야만 한 것은 내가 드물게 내린 나를 위한 큰 결심이 형태도 없이 흩어지는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머리말 뒤에 나올 문장들엔 어떠한 의미나 의도가 우선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글들을 안쓰럽게만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눈길을 찾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며 글을 연다.
"실상은 멀쩡하지 않은 마음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