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for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어느 장마 끝난 2017년의 여름날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장마가 끝났다는데 출근하는 1호선 전철역 플랫폼은 장마철보다 더 꿉꿉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출근길 플랫폼의 습도 때문인지, 일터의 상황에 불안해서인지, 30년 같이 산 가족들 사이에서 진이 다 빠져서인지, 지지부진한 연애나 비교질 하는 친구관계 때문인지, 흔히 쥐꼬리만 하다는 월급과 넉넉하지 않던 지갑 사정이 조급해서인지. 뭐가 되었건 미적지근한 의욕과 걱정만 한가득인 마음을 안고 이마의 땀을 닦아내기 바빴다. 한 시간 정도 되는 통근길, 사람으로 이미 가득한 용산행 급행 전철 안에서 나는 핸드폰 메모장과 인스타그램에 이 심정이나 단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나를 불안하고 힘 빠지게 했던 것들 중 하나만 소개하려고 한다. 24시간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르는 장소인 일터. 그때 나는 지역 청년을 위한다고 ○○시가 만든 종합지원센터로 일을 다니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 센터를 수탁받은 법인회사 대표는 보조금 유용과 횡령을 하였고, 대표 외 사무실의 모든 직원 다 같이 이를 ○○시에 신고했었다. 하지만 신고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는데도 ○○시는 마땅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 사안이 이렇다 보니 센터 일은 제대로 될 리 없고, 직원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했었다. 시 세금으로 운영되는 센터의 불법적인 문제를 신고했으니 나나 직원들은 공익제보를 한 것인데, 그저 대표에겐 배신자들의 '내부고발'일 테니, 돌아올지 모르는 보복이나 실업의 두려움이 매우 컸다.
그런 때에 통근길에서 우연히 시 하나를 읽게 되었다. 이해인 시인의 <미열>. 내가 읽었던 이 짧은 글 하나는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나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메시지 같았다. 절기나 달력으로는 다 끝나가는 여름임에도 이 온도와 습도는 여전히 여름인 시기에, 무력하고 답답하게만 만드는 상황에, 그럼에도 출근은 해야 하는 이 찜통 같은 용산행 급행열차 5-3 출입구 위치에 서서, 이 시는 계속 마음에 곱씹어졌다. 이 상황을 내가 당장 어찌하지 못하면서도 갑갑해하기만 하는 스스로를 채근하는 것, 그런데 그 상황과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을 한편으론 이해한다는 것, 미적지근한 의지를 갖는다거나 애매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던 그 시기의 나는 '미열' 그 자체였다.
약 1년 전, 종합지원센터 업무(2017년의 상황은 나름 잘 해결하였다.)를 그만두고 내가 써오던 글들을 책으로 내보고 싶었다. 끄적이던 글들에는 이런 미열을 느끼는 내가 있었고, 그걸 더 다듬고 보니 '어라, 시가 된 거 같다'라고 퇴사하고 나서 생각이 난다. 시 속의 나는, 계속 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환절기에 잔열 남은 냉방병 환자와 참 비슷하다. 이 말머리 쓰는 지금과 같은 달. 그 글들을 모아 시집 <봄도 없이 가을은 가고>가 되었다. 다만 지금의 나는 먹고사는 문제가 앞 닥치면서 책 출간을 잠정 보류하고 있다. 이 또한 나를 답답하게 하는 상황이니 나는 또 열을 풀려고 이번엔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다. 2017년이던 2024년이던 미열로 힘들던 내가 남긴 시, 그리고 여러 나의 일상을 바꾼 퇴사까지의 감정적 배경색을 아마 조금은 간접적으로 느껴지진 않을까 생각한다.
아, 이젠 순식간에 겨울이 오겠지.
2024년 9월 중순, 모니터 앞에서 씀
연재되는 내용은, 제가 독립출간 준비중인 시집 <봄도 없이 가을은 가고>의 시 원문에 대한 아이디어, 감상 또는 공감할 법한 단상, 새롭게 얻은 영감을 담은 새로운 시 등을 엮은 코멘터리입니다. 시 원문들은 연재되지 않습니다.
저는 2023년 가을도 없이 겨울이 되어버린 때에 일터를 스스로 떠났습니다. 일 년 가까이 시집을 준비하였고, 시와 관련하여 여기 브런치에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