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병리학적인 우울증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감정에서의 우울에 대해서라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꽤나 가까이서 동행해 왔기 때문에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우울함을 겪는 이들이 보는 세상은 왜곡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생각은 모두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명제처럼,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은 매일 이 고통을 마주해야만 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결고 즐거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잔혹한 현실을 온 몸으로 체감할 때 우울에 빠진다. 고통 받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울해 진다.
우울을 피할 방법이 단 한 가지 있긴 하다. 그냥 도망치는 것. 우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고통의 이유를 파헤치지 않는 것, 자신의 아픔에 대해 곱씹지 않는 것, 다 같은 이야기다. 세상의 어떤 따듯함이나 긍정으로도 우울을 극복할 수는 없다. 우울은 깊게 뿌리 내린 커다란 나무와 같아서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고생해서 잘라내 버린다 해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다. 우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곳에 가지 않는 것만이 살 길이다.
도망쳤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우울에게 되돌아 가야 할 때도 있다. 좀 자주 되돌아 갈 수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되지 않는다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해서라도 우울의 자리를 외면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생에 걸친 싸움이 될 수도 있고,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속 한나에게 일어난 일도 이와 같았다. 누군가 한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내밀어 주고, 그런 ‘작은 관심’들이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 했어야 하는 일은 한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관심과 사랑은 한나가 이미 받고 있던 것들이다) 한나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무게감이 달랐을 수도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짦은 간격으로 하나씩 겹쳐지며 어쩌면 실제 무게보다 더 무겁게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 무게에 짓눌린 한나는 우울 밖으로 시선을 돌릴 새도 없이 매일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왜’와 ‘어떻게’는 우울을 부르는 마법의 주문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우울은 물귀신처럼 다가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날마다 더해지는 우울의 무게에 짓눌리던 한나는, 마지막 가지에 등이 부러진 낙타처럼 일순간 무너져 버렸다.
10대는 이상한 시기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누구나 겪지만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시기다. 나는 그래서 ‘사춘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춘기’라는 단어의 빈곤함은 그 시기를 필연적으로 지나야만 하는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고민들을 ‘어려서’ 혹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이유로 버무려 버리곤 한다. 많은 이들의 우울함과 고통이, 그들이 10대라는 이유로 그냥 가만히 견뎌내기만 하면 곧 지나갈 예민함으로 간과된다. 한나가 남긴 테이프 안에는 그녀의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담겨져 있었다. 누군가 자살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없단 것을 테이프를 통해 들려준다. 그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자신만의 우울이 있다. 그건 1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고 사춘기라서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겪는 시기라 그렇다.
요즘은 ‘우울증’이란 단어가 ‘사춘기’와 비슷한 현상을 겪는 듯 하다. 올해 겨울, 반짝반짝 빛나 보였고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믿었던 사람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발작적으로 ‘우울증’이란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진짜 행복’에 대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모르는 새에 우울증 환자가 되어 있을까봐 두려워 하기도 했다. 어느새 우울증은 지치고 무기력한 마음 상태를 통칭하는 단어가 되어 있었다.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는 것까진 괜찮지만, 다만 고통이란 여러가지 모양을 가지는데, 여기에 대한 사색 없이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울증이니까 약 먹으면 된다’라는 식의 단순한 결론으로 빠질까봐 난 그게 두렵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한 접근은 또 다른 우울을 불러올 뿐이니까.
삶 속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말 힘들 땐 굳이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로 가득하고 당신의 우울도 그 중 한 가지다. ‘도망쳐 간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그건 도망쳤기 때문이 아니라 낙원이 원래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그렇다. 그러니까 필요할 땐 잠시 도망쳐도 된다. 오늘 하루만, 지금 단 몇 분만, 문제에서 눈을 돌려 다른 생각을 해도 된다. 실없이 웃긴 코메디를 봐도 되고 그냥 멍을 때리거나 잠을 자도 된다. 오랫동안 행복할 수는 없어도 잠시라도 괴롭지 않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다. 잠시를 이어 붙이다 보면 삶이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