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
지난 주 수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대중교통 루트를 검색해 보면 지하철을 타는 것이 ‘최소 시간’ 이라고 앱에서 알려 준다. 하지만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고 낯선 사람들의 숨냄새와 그들의 체온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어 가야 하는 지하철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기가 빨려 나가는 것 같은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끝없이 광고가 걸려 있는 하얀 벽을 지나가는 시간은 실제로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온 수요일에는 중간에 마을버스로 갈아타면서 잘못 갈아타는 바람에 예상 시간보다 20분 가량 더 걸렸지만, 지하철을 탔을 때만큼 피곤하지는 않았다. 창 밖으로는 산과 번화가의 길거리가끊임없이 지나갔다.
소프트웨어는 지하철을 두번 갈아타고 오는 길이 빠르다고, 계산 결과를 알려주지만 인간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달려오는 길을 더 짧은 시간으로 느낀다.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그렇게 느끼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겠지. 실제로 주변에 볼거리-상점, 노천 카페, 건물과 가로수 등-이 있을 때 인간은 같은 거리를 걸어도 실제로는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고 느낀다고 한다(<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찰스 몽고메리).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소화하고 느낄수록 더 긴 인생을 살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하루를 살았지만 그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지면 그 사람은 일주일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몇 년을 살았더라도 인생을 채울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면, 짧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다면 실제로 태어난 날로부터 먹은 나이가 50살이든 70살이든, 20살처럼 혹은 15살처럼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거다. 아무리 어리고 젊은 나이라도 실제 나이의 두 세 배는 더 먹은 것처럼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
2.
6월 12일에는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헬멧을 쓰고 곤봉을 든 경찰들과 대치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SNS와 인터넷 뉴스로 전세계에 전해졌다. 우리는 이제 핸드폰과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물리 법칙 — 정확히는 우리가 기존에 익숙했던 물리 법칙,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기 까지는 떨어져 있는 만큼의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법칙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모습을 거의 동시에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는데,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인터넷 상의 세상이나 다가올 미래의 세상은 우리가 알던 법칙과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2020 원더키디>에서 모두가 땅으로 다니지 않고 하늘을 나는 교통 수단을 이용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인간이고 계속해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이상 변할 수 없는 법칙들이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2020년에서 1년 남은 2019년이지만 아직 공중이 아닌 지하로 길을 파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이 가상(virtual) 세계라고는 하지만 실제 물리적 공간과 똑같이 한 번에 한정된 인원만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세계는, 말하자면 이상한 방식으로 연결 돼 있다. 가상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방식으로. 6월 12일의 홍콩 시위대 모습을 보며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최루액과 고무탄을 동원한 경찰들과 그럴 수록 더 촘촘하게 뭉치는 시민들의 모습은 광화문에서도 많이 봐 왔던 풍경이었다. 홍콩처럼 자신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실어보낼 수 없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그 댓가로 희생 당하고, 때로는 목숨을 잃고 있을 것이다.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들은 다른 세상에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우리는 기시감이나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걸까?
우리는 여전히 이상하지만 견고한 방식으로 연결 돼 있다. 근본적으로 모두 다 인간이라는 방식으로. 그리고 나는 항상 그 사실을 믿는 인간들이 많아질 수록 모두가 더 강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