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Jun 29. 2020

가을의 마음

2019년 10월

https://www.youtube.com/watch?v=QnJFhuOWgXg

‘계절성 우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서 갑자기 일조량이 줄고 비타민 D 합성이 잘 안되면 생길 수 있는 우울감이라나. 임상적 우울증과는 확연히 다른 증상이고, 더 추워지면서 적응되면 괜찮다고는 한다. 사람은 진짜 웃긴다. 동물은 날씨, 지형 등에 따라 사는 곳도 다르고 생김새도 확연히 다른데 사람들은 피부색하고 머리 색 정도만 다르지 연교차가 60도인 나라에 사는 사람도 1년 내내 20도 내외의 천국 같은 기후 속에 사는 사람도 눈코잎 팔 다리 달린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기분 정도나 좀 나빴다 좋았다 하며 어느 날씨 속에서든 살아가는 이상한 종이다.


SNS만 봐도 찬바람 불기 시작한 뒤로 부쩍 사람들이 갑자기 인생을 성찰하고 옛사랑을 추억하고 지금의 감정을 미화하는 글들을 올린다. 나도 9월말부터 계속 기분이 날씨처럼 오락가락 하기 때문에 그런 감상적 멜랑콜리들을 이해 한다. 하지만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종류의 우울감이다.


홍콩에서는 시위와 경찰의 진압이 격해지면서 사상자와 체포된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다들 꾸역꾸역 출근하고 일상을 이어가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날마다 폭력을 마주하며 막막한 미래에 대한 마음을 품고 사는 그 곳의 청년들이 어떤 마음일지는 감히 타지인이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와 이란에서도 10월 초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이미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죽었고, 에콰도르에서도 전국적 반정부 시위 중이라고 한다. 에콰도르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 어떤 분위기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경찰을 인질로 잡을 정도라 하니 여기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닌 듯 하다. 터키는 쿠르드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고, 나라 없는 이 민족이 사는 곳은 하필 시리아라, 시리아는 또 이래저래 폭격이 멈출 날이 없는 땅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휴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나 전국가적 폭력 사태가 없다고 해서 그저 모두가 조용히 잘 지내는 것도 아니다. 왓챠에 EIDF 2017~2018년 작품이 한꺼번에 업데이트 되었길래 쭉 훑어보고 있는데, 상당 수의 작품이 재개발 지역과 거기서 이주 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빈곤층에 대한 이야기다. 중국, 캐나다 등 배경도 다양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번에 너무 많이 보니 이런 사람들을 옆에서 관찰하고 영화로 만들어 상을 받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 환멸이 날 정도다. 누군가는 삶의 터전이 걸린 생존 문제인데 제3자가 그걸 소재로 이득을 취하는 현상의 아이러니가 날카롭게 마음 속을 파고 들었다.




EIDF 2017년 셀렉션 중 <텅 커터 : 어린이 극한직업>이라는 작품이 있다. 노르웨이의 북부에서는 대구 혀 자르기 작업을 전통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몇백 년전부터 이 작업을 어린이들이 하는 것이 전통 문화라 한다. 갑골문자 쓰던 나라 옆에 붙어 몇천년 전부터 글쓰고 그림 그려온 것을 전통 문화유산이라 배워 온 아시아 사람의 시선에서는 생선 살 바르는 것을 전통 문화씩으로나 지정해 보존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좀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뭐 거기선 그렇다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슬로에 사는 9살 윌바가 엄마의 고향에 가서 이 대구 혀 자르기 체험을 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인데, 킬로그램 당 돈도 받고 당연히 이 돈은 직접 번 어린이가 모아서 마음 대로 쓸 수 있도록 부모들이 지도해 준다.      



아동 노동은 심각한 세계적 문제다. 하지만 그건 그 아동이 유색 인종, 3세계 국민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빈곤국의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 당하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종일 일터에서 노동력을 착취 당한다. 하지만 1세계의 백인 어린이는 나라에서 권장하는 노동을 적정 시간 동안 하고, 전통 문화 보존에 참여한다는 명목으로 의무 교육을 위한 학교 출석도 공제 받으며, 그 노동으로 번 돈을 모아 자기 소유의 보트를 산다.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부가적 부까지 소유할 수 있으므로 굳이 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출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아갈 수록 우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깨끗하고 파란 가을 하늘을 보고 세상은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 마시며 멜랑콜리에 젖을 수 있는 이 온건한 삶이,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제비를 뽑았을 뿐이다. 불행의 제비를 뽑지 않은 사람들의 몫은 행운에 안도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불행의 제비에 뽑힌 사람들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계속해서 주시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지만 잊혀진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왕 찬바람에 싱숭생숭한 맘이 된 김에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똑바로 받아들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6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