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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Nov 05. 2020

그림 보고 글 쓰기

BGA에서 그림 보고 글 쓰기 

* BGA Works 는 매일 한 점의 그림과 한 편의 에세이를 제공하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입니다.


나는 디오라마를 좋아한다. 역사 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지금은 없는 건축물들의 모습을 구현한 디오라마 앞에서 대부분의 관람 시간을 보낸다. 일전에도 구룡성채 공원에 있는 옛 구룡성채 단지를 재연한 디오라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정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홍콩에 간 적이 있었다. 디오라마에는 일종의 시간이 갇혀 있는 느낌이다. 시간은 필연적으로 움직임이어야 하는데(상대성 이론에서 이런 이야길 들어본 것 같은데 사실 어려워서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시간과 움직임-운동-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상대성 이론의 내용 중 일부를 설명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과학적으로 틀린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서 상대성 이론에 대해 백과사전을 다시 찾아 봤지만 여전히 어려워서 내가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그냥 개념 자체를 배제하고 주관적으로 쓴다.) 디오라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시간을 정적인 어딘가에 잡아 가둔 느낌이 들어서 왠지 기분이 좋다.


조재연 비평가의 BGA 컴필레이션 <몇 시인가요>에서는 점이 면을 가진 도형이 되기까지의 시간, 산맥이 자라나고 다시 축소되기까지의 시간, 중력에 의한 흘러내림의 시간 등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회화는 일반적으로 어떤 한 장면, 생각 같은 추상들의 한 순간을 캡쳐한 정적 물체라고 여겨졌지만 사실은 그 한 장의 그림 안에 움직이고 있는 시간의 운동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컴필레이션 자체가 이미 일종의 감상문이기 때문에 감상문에 대한 감상을 구체적으로 적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 컴필레이션을 읽고 느낀 한 가지는, 내가 왜 디오라마를 좋아하는지 이제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운동성을 잡아 가둔 정적인 가상의 세계라니, 이렇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흥미로워 보인다.



<결>


결1 (표준국어대사전)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


결2 (표준국어대사전)

1.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2.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3. 곧고 바르며 과단성 있는 성미.


아래 나열한 세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염료들의 결이 보인다. 그림의 어떤 부분에서는 한 방향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역방향으로 혹은 동서남북 제각각을 향해 뻗어 있는 염료들의 결. ‘결’이라는 단어는 물리적인 바탕의 상태, 무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미를 지칭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결의 물리적 성격이 사람의 캐릭터를 묘사할 때 이미지적으로 꽤 딱 들어 맞는 듯 하다.


"나뭇결" - 이승주, 정직한 검은 땅, 2018

결이라는 명사의 사전적 정의는 이 단어가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서' 일정하게 짜인 것을 나타낸다 한다. 이 그림에는 무엇이 모여있을까? 한데 아주 오래된 숲의 나무들이 모여 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늙은 나무 한 그루의 표면 같기도 한 이 먹물들의 결을 걷어내면 깊고 진한 검은 땅이 나타난다. 마치 나무를 베어냈을 때 나무의 짙은 색깔 껍질 아래 숨어 있는 다른 색깔의 나뭇결을 바라보는 것 같다. 나무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가로로 나이테가 생기듯이 이 나뭇결도 나이테에 따라 평행선 또는 물결무늬 등으로 생겨난다고 한다. "나무의 살 속 갈피마다 머금고 있던 나뭇결이 화병 깎이는 대로 드러나 저절로 아롱진 그림인 것이다."(최명희, <혼불>) 하지만 자신이 품은 세월을 내보이는 나뭇결과는 반대로 새까만 먹물로 칠해진 그림 속 정직한 땅의 검은색은 원래 검정의 본분이 그러하듯 자신에게 와 닿는 모든 것을 흡수할 뿐, 반사해 보여주지 않는다. 나뭇결과 다르게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서 버텨 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속에 무엇이 빨려들어 갔는지는 결국 상상해 보는 수밖에 없다.


"물결" - 국동완, 900x no.6 데칼코마니 라이프, 2018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실내 수영장을 찾아가고 여행을 가도 반드시 수영이 가능한 숙소를 찾아 예약한다. 유라라는 가수가 부른 <수영해>라는 노래도 좋아한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물 속의 파동은 / 모든 걸 일그러뜨려 (중략) 굴절들이 내 몸을 마시려 하고 / 특이하고 울렁거릴 장면이겠지” 물에도 결이 있다. 물결치는 표면을 바라 보고 있을 때, 혹은 일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수면 아래 귀가 잠긴 채 고요 속에서 가만히 떠 있을 때 느껴지는 기분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내 문집에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물 속에 몸을 담글 때는 새로운 기분이 든다. 공기가 아닌 물의 밀도와 온도가 살갗을 둘러싸는 그 느낌은 물의 온도가 어떠하든 항상 그렇다. 때로는 아늑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설레기도 한다." 붓으로 표현된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작게 쫄랑쫄랑 대는 물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숨결" - 빈센트 반 고흐, Shoes, 1888

앞의 두 그림과 다르게 고흐의 그림에서는 일렁대는 결이 잘 보이지 않는다. 거칠게 지나간 붓자국만 보일 뿐이지만 그 투박한 붓자국 속에 짙은 한숨이 들려오는 것 같다. 평일인 오늘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의 숨결이 들어있는 그림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림 설명에는 고흐가 노동자 계층에 가진 각별한 동경을 표현하는 그림이라고 쓰여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늘 격정적인 사건과 우울에 시달리던 고흐가 느낀 인생에 대한 진한 피로가, 이 구겨지고 헤진 한 켤레의 신발을 보았을 때 그 신발을 신었던 이도, 그 신발도, 자신의 그 피로를 느끼고 있을 것이란 동질감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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