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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an 04. 2021

겨울의 맛

찐 밤과 <트윈픽스>와 <디스코 엘리시움>

2020년의 끝에 다다랐을 때 쯤 '올해의 무엇'같은 회고를 한번 정리해 볼까 했었는데, 올해라고 하기엔 날짜 개념이 너무 흐릿해져서 올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시간 감각이 거의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일들은 일어난지 몇 주밖에 안됐는데도 벌서 몇년 전 일 같고 어떤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지나간 것처럼 느껴져서 한 해 회고를 그만 두었다. 연말연시 특유의 시즈널한 감상 같은 것은 원래 취향에 안 맞기도 하고, 전 인류가 처음 맞아보는 시대인 2020년을 지나면서 뭔가의 좋음과 나쁨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두가 엄청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는 이 때에 어쨌거나 월급을 받으며 생계를 보전하는 입장의 내가 삶에서 뭐가 좋았고, 뭐가 나빴다 같은 이야기는 조금 순진한 투정 같다. 좋고 나쁨을 느낀 순간들이야 무수히 많았지만 굳이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남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어떤 연단위의 회고 보다는 계절의 페이소스에 더 집중하고 있는 요즘이다. 겨울이니까, 겨울이라서 좋은 것들을 충분히 누리려고 노력한다. 


이번 겨울 새로 발견한 가장 큰 즐거움은 찐 밤을 먹는 것이다. 예전에는 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적당히 달달한 밤을 앙금처럼 부드럽게 부서질 때까지 찐 다음 구운 견과류 향이 살짝 나는 청차와 같이 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차 중에서 대만 우롱차를 좋아해서 차도 실컷 마시고 펑리수도 가게 종류 별로 먹고 싶어서 2020년 중에 대만에 싶었는데 이제는 언제쯤 가능할지 불투명해졌다. 한국에서도 대만 우롱차와 펑리수를 먹을 수는 있지만 날씨도 분위기도 모든 것이 다 달라서인지 그 기분이 안난다. 그래서 겨울의 서울에서는 찐 밤과 차를 먹는게 훨씬 맛있다.



올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에 처음으로 드라마 <트윈 픽스> 시리즈를 모두 봤다. 시리즈의 프리퀄 내용에 해당하는 영화만 봤어서 전체적으로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얼마 전에 나온 새 시즌까지 이어서 드라마 전편을 보니 이야기가 완결되는 느낌이었고(물론 평범한 기승전결이 아닌 린치 식이긴 하지만) 왜 린치가 영화 '읽어주길' 즐기는 시네필들의 우상으로 남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무언가를 읽어내고 의미를 부여해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데이빗 린치나 왕가위 같이 불친절하게 영상을 만드는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한다. 몇 번씩 돌려 보면서 의미를 깨달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기하니까 재밌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지적 토론을 유발하는 어려운 기표들을 좋아해서 이런 영화들을 즐긴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냥 낯설고 이상한 것들을 그 자체로 좋아할 뿐이다. <트윈 픽스> 속 이미지들은 괴이하면서도 아름답게 구성되어 눈길을 끌고, 내러티브는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음 편이 궁금해 진다. <트윈 픽스> 속 붉은 방과 <화양연화> 속 호텔 로비가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하면 흥미롭다고 혼자 생각하고 말 뿐, 그것들이 무엇을 상징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읽어내는' 데에는 별 관심 없다. 


하지만 이런 낯섬 속에 섞여 있는 유머들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하다. 보청기를 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고든이나 커피를 마실 때마다 "기가 막힌 커피군(Damn good coffee)!"라고 외치는 쿠퍼 요원의 평범한 유머는 캐릭터들에게 정을 붙이는 걸 도와준다. 뺨에 쌀쌀한 기운이 와 닿는 날씨에 향기롭고 쓴맛의 따듯한 액체를 마시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아마 북위 40도 위쪽에 사는 인간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일 것이다. 트렌치 코트를 입고 루시가 따라준 커피를 마시는 쿠퍼 요원을 보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 김이 피어나는 머그컵을 내가 직접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하얀 연기를 바라보는 기분은 아늑한 침대 위에서 깨어나기 힘든 깊은 악몽을 꿀 때와도 비슷하다.


시즌3는 이제 거장이 된 데이빗 린치가 '금발 여자 시체'의 아이콘으로 박제된 로라 파머에게 길고 긴 사죄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점이 좋았다. 굳이 무언가를 꼭 읽어내야 한다면, 그건 로라 파머가 자신이 온전히 창작해 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린치가 로라 파머를 묘사하고 소비한 방식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바로잡고자 하는 감독으로서의 노력이라 생각한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된 연말에는 <디스코 엘리시움>이란 게임을 했다.일시적인 기억 상실증에 걸린 어떤 형사의 이야기인데, 가상의 대륙과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세계관 속에서 이 형사가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 나가는 스토리가 주축이 된다. 하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의 스토리가 좋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캐릭터 설정은 <트루 디텍티브>와 <더 와이어>에서 거의 모두 따오다시피 한 수준인데다 이미 나는 게임 제작자들이 쓰는 여성혐오를 한 스푼 곁들인 '찐따 모에화' 자아상들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도저히 이런 스토리는 2021년이란 미래적 숫자의 연도에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좋다고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레퍼런스들이 너무 많이 섞여 들어가 있는 컨셉 아트와 전반적인 분위기에 호감을 느끼지 않기가 힘들었고 형사 버디물 장르 성격이 명확해 매니아들은 몰입할 만한 스토리라인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아트워크는 렘브란트, 칸딘스키, 제니 사빌 등의 화가들을 레퍼런스 삼았다는데 설명만 들으면 무슨 소린가 싶지만 게임 내 작화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게임성 자체도 괜찮아서 주사위 확률로 진행하는 그 짜릿함(!)에 몰입해 2주 동안 30시간 넘게 이 게임만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애수 어린 배경 음악을 들으며 하얀 솜이불처럼 덮인 눈 위로 일렁이는 갈색의 마른 갈대들을 헤집고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슬픔과 고통에 절여진 사람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디스코 엘리시움> 속 겨울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아직 겨울이 절반, 아니 아직 반도 안 지나갔는데도 벌써 이 계절을 좋아하도록 도와주는 것들을 이렇게나 찾아냈다. 너무 싫어서 웅크리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계절인데 갑자기 이렇게 즐겁게 보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다니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굳이 요즘 같은 시기라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삶에서는 무엇이든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자주 복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들에는 늘 오만가지 논리적인 이유가 있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내일을 계획하게 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더 신경을 쓰고 시간을 들여 이유를 만들어 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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