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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관계 2

1부. 무지개물고기의 사랑

by 앤드장

중국 출장 때의 술자리에서 듣게 된 김 실장의 이혼 이야기는 황 팀장을 놀라게도 했지만, 항상 같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도 컸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김 실장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참 힘들게 살아왔겠구나!'

황 팀장은 이전보다 김 실장을 좀 더 살폈고 배려하려 애썼다.

저녁식사 자리나 야근할 때도 배려하는 마음 때문인지 이전과 다른 느낌이었고 황 팀장은 김 실장의 고백 이후 자신도 그녀에게 좀 더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다.

애 딸린 솔로임을 알게 되고 왠지 항상 곁에 있는 자신이 지켜줘야 할 거 같은 보호본능마저 들었고 그런 마음은 오히려 함께 있을 땐 자신이 배려받는 것처럼 그전과 다른 따뜻함마저 들었다.

"김 실장님, 이번 주말에 뭐 하세요?"

"당연히 아들 만나야지. 호호"

이젠 자연스럽게 아들이야기를 한다.

숨기려 했던 건 아니었지만, 고백 이후 김 실장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래요? 저도 함께 보면 안 될까요? 주말에 약속도 없고 희창이가 궁금하기도 한데…."

"음…, 그럴래?"

"그래도 돼요? 오케이."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황정선 팀장이다.

외동딸로 엄격하게 자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껴서인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면 어린 시절 외로웠던 스스로에게 위로라도 하듯 반갑게 웃음부터 짓게 되는 그녀다. 근본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일만 하며 디자인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살이 찌게 되어 남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항상 일만 하며 바쁘게 지내며 회사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던 황 팀장은 처음으로 동료의 사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며 다가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김 실장과 함께 한다는 게 즐거웠다.




주말이다. 장마철인데도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한 그녀의 아들을 본다는 생각에, 설사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기다리는 소개팅을 하는 양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다.

장마철이라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야외가 아닌, 다섯 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아쿠아리움을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다.

아쿠아리움에 다가서니 입구에 김 실장이 보인다.

그 옆에 손을 꼭 잡고 똘똘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함께 서 있다.

“빨리 오셨네요?”

"희창이가 하도 서둘러서. 물고기를 본다니까 너무 좋은가 봐."

"희창아, 이모에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정선이모."

"호호호, 이모라고 불러줘서 고맙다. 희창아. 오늘 이모랑 재밌게 놀자꾸나!"

황 팀장은 아이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한 즐거운 기분이다.

티켓팅 후 입장하자마자 대형수조의 각양각색의 온갖 물고기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사방이 물과 물고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유선형의 우주선 같은 대형 가오리가 비스듬하게 유유히 흘러 지나가고 문어가 수면을 향해 위로 솟아오른다. 형광빛을 품은 해파리군단이 여유롭게 공간을 유영하고 있으니 물속이라기보다는 흡사 우주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적인 기분이다.

스피커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인어공주의 언더더씨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와 문어가 춤을 추고 가제가 조개를 두드리며 연주하는 신나는 바다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신기하고 환상적인 바닷속 같은 모습이 눈앞에 보이니, 오감이 즐겁다.

“우와! 엄마 저거 봐봐. 와~” 연신 감탄사를 지르고 있는 희창이가 마냥 귀엽다.

물빛이 비쳐 파란 김실장의 얼굴은 동그랗게 뜬 큰 눈과 어린애처럼 신기하단 표정을 지은 모습이 다섯 살 희창이와 쏙 닮아 있다.

평소 우울하던 눈망울이 아닌 물빛이 반사돼서 그런지 초롱초롱 빛이 나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황 팀장은 생각한다.

김 실장의 등 뒤로 수많은 은빛정어리 때가 반짝반짝 수를 놓으며 헤엄치고 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일벌레들은 일 이야기도 한다.

"이번에는 바다생물시리즈 어때요?"

"좋아! 재미나겠는걸."

"희창이를 동화 속 주인공으로 해요, 우리. 호호호."

다양한 바다생물들을 보며 해설문과 이야기도 꼼꼼히 기록하며 셋은 아주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벌써 김 실장의 머릿속에선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개 물고기의 사랑

무지개물고기.jpg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색 무지개빛깔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어느 날 빨강물고기와 파랑물고기가 그물에 잡혀 사라졌다.

인간 희창이가 잡아서 자기 방의 둥근 어항에 넣었다. 빨강물고기와 파랑물고기가 서로 좋아하길 바랐으나 자꾸만 빨강물고기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빨강물고기와 서로 좋아했던 주황물고기는 빨강물고기가 사라지자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노랑물고기를 좋아해 버렸다.

빨강물고기가 아파하자 물고기를 사랑했던 희창이는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아끼는 물고기를 다시 잡아온 바다에 놓아주었다.

다시 돌아온 빨강물고기는 주황물고기와 노랑물고기가 함께 있는 걸 보고 실망하여 떠나 버렸다. 주황물고기는 빨강물고기를 다시 보니 혼란스러웠지만 얼마 후 또 다른 남색 물고기에게 접근했다.

다른 곳으로 떠난 빨강물고기는 어항에 함께 있었던 파랑물고기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희창이의 바람대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둘을 빼닮은 보라물고기를 낳았다.

보라 물고기는 파랑물고기의 영향으로 아주 예쁜 파랑 꿈을 가슴에 담고 키우며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날, 자신과 닮아있는 초록물고기가 맘에 들어 가슴에 숨겨둔 파랑 꿈을 꺼내 보여주자 초록물고기는 자기가 꾸는 꿈과 같은 걸 알고 보라물고기와 진실한 사랑에 빠졌다.


"황 팀장 이 스토리 어때?"

"별로요. 사랑이야기 밖에 없잖아요."

"솔로들의 이야기는 없어요?"

"솔로였다 사랑하는 이야기잖아?"

"세상사도 그렇지 않나? 솔로였다, 커플였다, 만났다, 헤어졌다."

"그런데 암수구분은 없어요?"

"어, 동화잖아. 그냥 좋으면 좋은 걸로 하자. 그런 거 따지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져."

"지조 있는 빨강물고기는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 인연을 깨달아 잘 살고 줏대 없는 주황물고기는 방황만하다 삶을 마감하게 되는 스토리라 이거죠? 그럼 초록물고기나 보라물고기는 어찌 돼요?"

"같은 꿈을 꾸며 잘 살아가지."

"아니, 결혼하냐고요?"

"뭐 그게 중요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희창이가 주인공 아니었어요?"

"호호. 그렇지? 대신 이야기에서 신처럼 가장 강력하게 나오잖아. 마지막에 초록물고기와 보라물고기를 잡아서 자기 어항에 넣는 걸로 할까? 그 안에서도 초록물고기와 보라물고기는 희창이와 잘 살았다고 마무리 짓는 거야. 인연은 장소, 환경 상관없이 어디에서건 만나고 함께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거지."

"호호. 해석을 하니 이야기가 그럴싸한데요? 좀 더 구상해 보세요. 좋은 동화책이 나올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다시 잡아 어항에 가두는 건 반대요. 호호호”


황 팀장은 김 실장의 저런 열린 생각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며 점점 빠져들었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일에 몰입하며 바쁘게 지내도 해소되지 않던 그 허전함이 김 실장에게 신경 쓸수록 오히려 자신이 치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 특별한 무지갯빛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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