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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나날

1부. 무지개물고기의 사랑

by 앤드장

장마가 끝나고 날이 덥다.

찌는 듯한 저 태양은 흥수를 더욱 지치게 한다.

35도를 오르내리는 열기는 뜨겁다 못해 심장까지 말려버린다.

외근을 나가면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하루하루 지치고 쓰러질 듯 삶도 메말라버렸다.

윤기 없이 말라버린 심장.

편의점에 들러 냉장고 안의 차가운 캔 맥주를 꺼내 들이켠다.

업무 중이지만, 메마른 심장에 수분을 공급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힘겹다.

그를 보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편의점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새하얗게 피어나고 있다.

‘미치도록 아름답군!’

중국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보던 구름이 생각난다.

중국출장, 즐거운 시간, 고백, 그리고...

흥수의 뺨으로 눈물이 흐른다.

그 꼬리를 무는 갈증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심장까지 전달되길 바라면서.


몸살이 났다.

밥 대신 더위를 먹어서인지 출근을 못하고 방안에 누워 있다.

몸이 불덩이다.

심장이 메말라 이젠 불이 옮겨 붙었다.

‘119라도 부를까?’

이 무더운 여름 열병을 치르고 있다.

태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천에서 열기를 뿜어대고만 있다.

언제쯤 이 더위가 물러갈지 모르겠다.

.

.

.

그렇게 끝날 줄 모르던 더위도 서서히 물러갔다.

어느새, 간간히 찬바람이 불어온다.

심장이 다시 차가워지고 춥다.

외롭다.




필화 대리는 뭔가 이상하다 생각한다.

두 남자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 흥수,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 민호, 셋이 모이면 즐겁고 홍일점인 그녀는 항상 주인공처럼 관심을 받는 기분이었는데...

중국출장 이후 두 남자 모두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뭐지?, 분명 민호 대리는 흥수 대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냥 소문인데….’

필화 대리는 중국출장 이후 정리가 안 되어 오랜 시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민호 대리가 흥수 대리를 따라다니는 것 같고 흥수 대리는 피하는 모양새다.

‘그 소문이 진짜인가?’ 그녀는 자신을 의심한다.

“흥 대리님,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해요?”

“그럽시다. 디자인팀에 민용이도 데리고 가도 되죠?”

“민호 대리님 아니고요?”

“네, 그 친구랑은 헤어졌어요. 하하하”

“뭐야?” 필화 대리가 암고양이처럼 흥수를 향해 눈을 흘기며 씩 웃는다.


금요일저녁이라 그런지 호프집이 시끌벅적하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흥수와 필화 대리, 그리고 흥수와 함께 온 젊은 친구 민용이와 지수도 있다.

사뭇 달라진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필 대리님 오늘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술 한 잔 하자니?”

“뭐, 우리 자주 마셨잖아요? 그런데 중국 출장 후 너무 뜸하길래.”

“그런데, 장 대리님하곤 왜 안 다니세요?”

“헤어졌다니까요. 하하하”

“어머? 장 대리님이 남자 좋아한다는 소문이 진짜예요?”

지수가 깜짝 놀라 묻는다.

“그 얘기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자 불금을 위하여!”

“짠”

모두 잔을 힘차게 부딪치며 입으로 시원한 생맥주를 가져간다.

흥수의 시선이 조용히 술을 마시는 민용에게 향해있다.

찬바람에 낙엽이 뒹구는 쓸쓸하고 외로운 날, 흥수는 누군가가 너무 필요해 주위를 둘러보니 조용하고 듬직한 민용이 눈에 들어왔고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그 시지프스의 굴레 같은 끔찍했던 형벌을 어느새 잊고 또다시 아무나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

시원한 생맥주와는 다르게 시끌벅적한 술집 안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또다시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각자의 방식대로 흐르고 있었다.



※ 시지프스의 굴레 : 언덕 위로 돌을 굴려 올리는 형벌인데, 올리는 순간 돌은 다시 언덕 아래로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다시 내려가 끝나지 않는 돌 굴리기를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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