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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다시

1부. 무지개물고기의 사랑

by 앤드장 Jan 29. 2025

황 팀장은 중국출장 때, 술자리에서의 사람들과 유쾌하고 즐거웠던 그때를 자주 회상하며 추억에 젖곤 했다. 

김 실장의 이혼했다는 고백을 들었던 그날 이후 그녀를 좋아하게 됐기 때문인지 그날의 그 자리가 특별하게 생각됐고 자주 떠올랐다.

황 팀장은 중국출장 멤버들과 다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단 생각에, 아니 그보다는 김 실장과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회식을 제안했다.

“장 대리, 우리 중국멤버들 오랜만에 뭉칠까 하는데 어때?”

“좋죠. 언제요?”

“이번 주 금요일 저녁으로 하자. 회사회식이긴 한데 중국출장멤버는 꼭 참석했으면 하는데, 그 멤버들에게 따로 연락 좀 부탁할게.”

“음, 흥 대리는 직접 말씀해 주실래요?”

“왜?”

“그냥요. 하하” 

민호는 흥수가 민용이와 함께 다니는 걸 보고 예전과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민호는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간 그가 자신에게 보인 관심이 우정이 아닌 다른 것임을 알고 서로를 위해 자신도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무관심하게 되는 건 허전함과 공허함을 동반했다.

일상적인 것들이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달라질 땐 더욱 황망한 기분이 든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폭우 같은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갑자기 나침반이 사라져 그 자리에 그냥 멍하니 정지해 있는 것처럼,

그랬다.

이제 흥수는 민호에겐 일상의 존재에서 갑작스럽고 출구 없는 그런 존재가 됐다.

민호는 이번 회식이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예전의 친구 흥수를 비롯한 모두와의 즐거운 술자리를 회상하며 약간의 기대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저 깊은 무의식에서는 끝나감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기대와 함께 뭔지 모를 두려움이 그를 감싸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는 붉어진 가을하늘이 사무치게 아름답다.

퇴근 후 술 한 잔 하기 딱 좋은 날씨에 금요일이다.

황 팀장은 김 실장이 회를 좋아하기에 회식장소로 횟집으로 정했다.

전체 회식이지만 몇몇 바쁜 직원들은 미 참석 했고, 중국멤버들은 따로 연락을 해서인지 모두 참석했다.

흥수는 민용이와 함께 횟집으로 들어오며 황 팀장과 함께 있는 민호를 보고는 멀찌감치 자리를 잡았지만, 황 팀장이 흥수를 보고 큰소리로 불렀다.

“흥 대리! 왜 그쪽에 있어? 이리로 와.”

흥수는 마지못해 민용이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김은희 실장, 황정선 팀장, 장민호 대리, 윤인석 대리, 박흥수 대리, 박민용 사원, 이필화 대리, 이지수 사원 이렇게 한 테이블에 합석하게 됐다.

“호호호, 이렇게 다들 모이니 너무 좋다. 황 팀장 덕에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회를 먹게 됐네.”

“저도 모두 함께라 오랜만에 너무 좋네요. 건배해요.”

건배제의에 다들 소주가 들어 있는 잔을 들어 부딪친다.

회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몇몇은 원샷을 한다.

기분이 너무 좋은 김 실장과 황 팀장, 그리고 어색한 민호와 흥수.

같은 술인데 둘은 달게 느끼고 또 다른 둘은 쓰게 느낀다.

“오~, 장 대리 웬일이야! 니가 첫 잔을 원샷하다니?”

항상 안주발 세우고 술을 들이켜는 장민호 대리의 버릇을 아는 윤인석 대리가 조금 놀란다.

“술이 엄청 다네.” 

민호는 너무 써서 얼굴은 잔뜩 찡그리며 반대로 말한다.

“달지? 설탕이라도 탄 건가? 호호호. 자 받아 장 대리.” 

기분 좋은 황 팀장이 빈 잔에 다시 소주를 가득 따른다.

“황 팀장! 위아래가 있지. 나도 비었어~엉.” 

김 실장이 애교 섞인 콧소리를 내며 황 팀장에게 잔을 내민다.

술맛만큼이나 그녀의 목소리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황 팀장.

이때 주문한 제철모둠회가 가을철에 맞게 전어를 기본으로 가자미, 돔, 방어, 우럭, 농어, 자연산 광어 등 살구 빛을 머금은 투명한 뽀얀 흰 살의 회들이 상에 놓인다.

“난 왜 이리 날 것이 좋을까? 봐봐, 저 뽀얀 것이 날름 날로 먹고 싶지 않아? 자 어서 먹자고.”

김 실장의 입이 귀에 걸려 행복해 보인다.

안주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유리 술잔이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짠~, 짠~” 

대각선으로 마주 앉은 민호와 흥수는 조용히 술만 들이켜고 있다.

오랜만에 둘은 술자리에 함께 있다.

흥수는 앞에 있는 민호를 보고 있자니 심장이 다시 나댄다.

이젠 아무 감정 없다고 수없이 다짐하며 잊기 위해 그렇게 힘이 들었는데, 이 심장은 누구 것인지? 노랫말처럼 심장이 고장 난 거 같다.

자꾸 나대는 심장을 들킬세라, 몸은 경직되지만 꼼짝 안고 자리에서 술만 들이켠다.

“형, 어디 아파요?” 민용이 묻는다.

“아냐, 민용아 한잔하자.”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술잔을 부딪친다. 

         

민호는 흥수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여 궁금하지만,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흥수임을 알기에 말없이 술만 마신다.

회를 먹느라 정신이 없던 김 실장이 느닷없이 “다음 프로젝트가 물고기사랑 이야기인데 이렇게 회를 먹고 있네, 호호호” 혼잣말처럼 말하며 웃는다.

“스토리 완성됐어요? 실장님!”

“거의 끝냈지.”

“파랑물고기랑 빨강물고기는 어떻게 돼요?”

“음, 어떻게 될까?”, 

“이어질까? 헤어질까?”

“죽일까? 살릴까?”

“행복할까? 불행할까?”

“뭐예요? 빨리 말해줘요, 실장님.”

“아직 라스트는 결정 못했어. 고민이야. 황 팀장은 어쩌는 게 좋겠어?”

“난 무조건 해피 엔딩.”

“그럼, 흥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조용히 술을 마시던 흥수는 김 실장을 쳐다보며 댓구한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뭐예요?”

“그냥 이야기해 봐.”

“해피 엔딩이야? 새드 엔딩이야?”

“새드 엔딩요. 해피 엔딩은 따분하고 재미없어요. 새드 엔딩이 여운이 남고 오래가잖아요.”

“장 대리는?”

“네? 모르겠어요. 무슨 얘긴지.” 

다른 생각에 술만 마시던 민호는 취기가 도는지 횡설수설이다.

“해피와 새드 중에 고르면 돼.”

“음, 모르겠어요.”

“장 대리는 패스.”

“민용인 어떻게 생각해?”

“저도 흥수 대리님과 같아요. 해피 엔딩은 너무 뻔해요.”

“그래도 우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화를 만들어야죠. 실장님. 전 무조건 해피 엔딩이니까 알아서 마무리해 주세요. 협박이에요. 호호호”

황 팀장이 말하며 다시 건배를 제안한다.

“우리의 무지갯빛 물고기들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회식 분위기는 무르익고 술을 마시다 보니 순간순간 서로의 존재를 잊고 앞에, 옆에, 대각선의 누군가와 습관처럼 건배를 하다 보니 흥수와 민호도 서로 잔을 부딪히고 있다.

“우리 중국에서 했던 진실게임 다시 해볼래요?”

필화 대리 제안에 황정선 팀장이 관심을 보인다.

“좋아, 벌칙은 소주 한잔 마시기. 대신 맥주잔이야.”

아무도 의견이 없자 “그럼 윗사람인 김 실장님부터 질문 3개씩 오른쪽으로 도는 걸로”

“실장님, 현재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아니.”

취기가 올라온 윤인석 대리가 나서며, 

“질문이 너무 약하잖아. 왜 이혼했어요?” 하며 묻는다.

갑자기 예민한 질문에 모두 인석대리를 쳐다보자, 

“왜 날 봐? 곤란하면 마시면 되지.”

분위기가 순간 싸해지려는데 김 실장이 입을 연다.

“너무 잘생겨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 소싯적엔 얼굴만 봤더니, 호호호. 이젠 남자들이 질색이야.”

의외로 차분한 답변에 황 팀장이 다음 질문을 한다.

“그럼 실장님. 누가 좋아한다고 하면 어쩌실 거예요?”

“어떤 사람인지 봐야겠지. 그런데 그럴 여유가 없어. 아들 키우느라 정신없거든. 호호호.”

중국에서의 고백 이후 김 실장이 하는 이야기는 더욱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신뢰를 주었고 오히려 좋은 소문이 돌았다.

“자! 그럼 오른쪽이라 했나? 황 팀장이네. 호호호”

“그럼 똑같은 질문, 좋아하는 사람 있어?”

“저 마실게요.”

“오~올.” 다들 놀란다.

“누굴까? 궁금한데, 나한테만 말해 봐.” 김 실장이 의외라는 듯이 말하며 손을 귀에 대며 황 팀장 쪽으로 몸을 돌린다.

“나중에요. 이젠 장 대리네?”

“그런데 좀 취한 거 같은데 넘어갈까?”

황 팀장의 말에 필화 대리가 나선다.

“안돼요. 팀장님, 예외는 없어요. 취했으니 더 잘됐네. 진실을 말할 거 아녜요. 호호호”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장 대리님, 남자 좋아해요?”

또다시 강도 높은 질문에 조용해졌다.

“에이, 다른 질문.” 민용이 말하는데 장 대리가 입을 연다.

“아뇨.”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필화 대리가 묻는다.

“그럼, 궁금했는데, 나랑 흥 대리님이랑 누가 좋아요?”

“질문이 뭐야? 하하하” 흥수는 말을 끊으려 나선다.

그때 꼬부라진 혀로 장 대리가 말한다.

“둘 다 좋은데….” 말하며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숙인다.

“뭐야. 너 취했냐?” 윤인석 대리가 장 대리를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흥수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바보 같고 순진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보호해 주고픈 마음이 든다.

그 모습을 보니 옆에 있고 싶다.

친구로 지내는 건  자신 없지만, 그래도….    

   

다음날 흥수는 민호에게 숙취음료를 건네며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민호야, 괜찮니?” 

“어? 어, 괜찮아.” 

민호는 흥수의 다정한 말투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예전처럼 친근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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