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무지개물고기의 사랑
월요일 아침,
김광은 팀장은 유난히 분주하다.
백업해 놓은 동화 파일원본을 숨기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주말 내내 생각했지만, 더 이상 일하고 싶지가 않다.
작은 회사여서 그런지 사장혼자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열심히 일을 할수록 자신에게 오는 게 아닌 남 좋은 일만 하는 것 같다.
중국투자 건이 어차피 한 회사일이라지만 그건 사장입장인 거고, 김 팀장은 자신의 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자꾸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이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박 대리, 오늘도 모닝 흡연해야지?”
“네, 팀장님” 흥수를 불러내 담배를 피운다.
“죽어라 일해서 벌면 다른 부서에 그 돈 다 퍼주고, 이게 뭐야? 젠장, 더러워서 그만두련다.”
“넌, 내가 그만두면 어쩔 거야?”
“네? 그만두신다고요?” 가끔 듣던 푸념에 놀랍지도 않지만, 깜짝 놀란 척하는 흥수다.
뻔하지만,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다시 모른 척 묻는다.
“왜요?”
“말했잖아, 몇 번을 말하냐? 박 대리. 내가 니 생각해서 더 다닐까 하다가 더러워서 더 이상 못 다니겠다. 사장 지 맘 데로야. 집도 봤지? 완전 으리으리하더만. 누군 좆나 뺑이쳐서 돈을 벌어주고 있고.”
“… 네.”
‘제발 빨리 나가라, 말만 하지 말고.’ 흥수는 속으로 생각한다.
“너, 나랑 같이 나갈래?”
당황하며, 팀장을 쳐다보는 흥수.
“음, 회사를 차릴까 생각 중인데, 생각 있으면 말해. 내가 동고동락한 너는 챙겨줄 수 있지.”
“생각해 볼게요, 팀장님. 고맙습니다.”
흥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미친 새끼.’
흥수는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파란 가을하늘을 향해 하얀 담배연기를 한숨 쉬듯 길게 뱉는다.
금세 흩어지며 사라진다.
아침, 저녁으로 날이 쌀쌀하다.
서늘한 바람에 붉게 물든 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다.
흥수는 중국 쪽 일을 하느라 국내전자도서관에 신경을 못 썼는데, 요즘 이상하게 학교에서 연락이 뜸하다.
‘매월 초마다 동화업데이트 해달라고 문의가 많았는데….’ 흥수는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그간 영업하며 친분이 생긴 학교담당자에게 인사도 할 겸 겸사겸사 연락을 해본다.
“선생님, 요즘 어떠세요? 도서관은 이용 잘하고 계시죠?”
“그럼요. 요즘은 김광은 팀장님이 알아서 챙겨주시니 감사하고 있어요.”
“네? 아, 잘 사용하신다니 감사합니다.”
‘김 팀장, 또 뭔 짓을 하는 거야? 아무튼 지 멋대로야.’
“팀장님, 이제 학교에는 제가 연락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김광은 팀장은 흥수의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하며 말한다.
“어? 네가 바빠 보여서. 학교 쪽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꺼라.”
퇴사를 결심한 이후, 김광은 팀장은 학교 쪽에 따로 연락해서 콘텐츠관리를 자신이 직접 하고 있다.
이미 여러 학교에서 지불한 비용을 사업자를 개설해서 자신의 통장에 입금시키고 있고 조만간 자신의 회사도 차릴 생각이다.
‘처음엔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며 돈을 벌어 독식할 수 있다면 불법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흥수는 이번엔 김광은 팀장의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섣부르게 이야기할 순 없고 답답하다.
민호에게 오래간만에 술 한 잔 하자고 하고 퇴근하며 둘은 자주 가는 오뎅빠로 향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오뎅빠에는 이른 저녁부터 손님으로 북적인다.
어두운 밖에서 서리 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술집 안에 있는 사람모두 친분이 있는 것처럼 착각될 정도로 정겨워 보인다.
“쓰~윽” 미닫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다행히 구석진 곳에 자리가 비어 있다.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모둠 오뎅꼬치와 소주를 주문하고 의자뚜껑을 열어 외투를 벗어 구겨 넣는 흥수, 반면 잘 접어 넣는 민호.
흥수는 이제야 하나, 하나 서로 다른 모습들이 보였고 그 다름을 발견하며 그 사실에 서서히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제대로 보고 있을 뿐 둘은 누가 봐도 처음부터 달랐다.
다르기에 매력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흥수는 아직도 민호에게 미련이 남아있다.
오늘은 핑계 삼을 이야깃거리도 있다.
“민호야, 김광은 팀장 걔 요즘 이상해.”
“뭐가?”
“아무래도 회사를 나갈 모양이야.”
“매일 하는 소리잖아?”
“그런데 이번엔 다른 때랑 좀 다르게 잘해주는 거 같아. 글쎄 내일을 자기가 하더라고. 다른 때 같으면 일 안 한다고 욕을 엄청 할 텐데 말이야. 사람이 변하면 뭔 일 생긴다잖아. 나한테 자기 회사 들어오라는데? 헛소리로 듣긴 했지만.”
“근데, 김 팀장이? 이상하긴 하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편해졌다니 잘 됐네!”
“날이 추워지니 국물이 더 따뜻하고 맛있다. 그치?”
민호는 화재를 돌린다.
“그러게,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따뜻한 국물도 마시니….”
“오랜만에 둘이 오뎅빠에 오니 좋은데….”
말이 끝맺음 없이 흐른다.
흥수는 마음이 여전히 허전하다.
이 썩어 문드러진 동아줄을 민호가 잡아당겨주면 좋으련만, 아쉬움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듯 끊어질 듯하다.
이미 알면서도 기대를 못 버리는 건 왜인지, 또다시 소주만 벌컥벌컥 마신다.
가을이 점점 싸늘한 겨울로 가고 있다.